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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토마스 울지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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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년 잉글랜드의 입스위치 태생으로 헨리 7세와 헨리 8세에게 헌신적이었던 가톨릭 지도자였다. 꼼꼼했던 헨리 7세에 비해 헨리 8세는 경륜이 부족함을 느껴 토마스 울지에 기댔다. 이로 인해 울지는 국가 재정과 정책 등을 직접 챙기며 '또 다른 왕'이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대법관에 이어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 절정에 올랐다. 프랑스, 스페인 등과의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1520년 '금란의 들판' 행사를 기획, 명성을 드높였다. 프랑스 칼레 인근 발링헴의 들판에서 헨리 8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참가한 이 모임에 울지는 영국의 관리들을 호화스럽게 치장시켜 프랑스와의 화해를 내세우면서도 영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울지 추기경은 헨리 8세가 캐더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는 과정에서 이혼을 불허하는 가톨릭의 수장 클레멘스 7세가 결정을 늦추는 사이 왕의 신임을 잃고 몰락했다. 반역죄로 기소 당한 울지는 1530년 오늘, 호송 도중 숨졌다. 그는 "세속에 소요했던 시간만큼 하느님을 섬겼더라면 이렇게 버림 받지는 않았을텐데…"라며 깊이 후회했다.

김지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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