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정현종

오래전, 어둑해진 강변 산책로에서 오래 혼자 우는 여자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여자에겐 울고 있는 자신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했어요. 그렇게 텅 빈 듯 보이는 여자는 아픈 충격이었어요. 그대로 한 채 거푸집이 되어 사라질까 가여웠지요.

오랜 후 이 시를 접하고 생각하니 울음 우는 그 시간과 공간이 그 여자의 왕국이었을 거란 느낌 지울 수 없어요. 세상과 차단된 침범할 수 없는 위엄과 고요와 괴로움, 그거 최고의 왕국 아닐까요. 완벽하게 혼자임을 실행했던 순간,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도 함께 만졌을 극명.

다시 말해 볼까요? 될 수 있으면 여자가 혼자 울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혼자 울게 하지 않는 현실이었음 좋겠지만, 울음을 통해서 깨닫는 진실이 있어요. 울음을 통해서 발견하는 세상이 있어요. 혼자서 울고 일어서는 여자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 없겠죠? 그러니 그 울음을 듣는 두 귀를 사랑할밖에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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