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민(39'여) 교수는 의사입니다. 현재 영남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봅니다. 특히 난치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전공이 재활의학과의 호흡재활, 근육병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루게릭병이나 근육병처럼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늘 안타깝습니다. 조절과 재활로 증상을 호전시키지만 정신은 또렷한데 혼자 밥을 먹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의사로서 내가 이들에게 해주는 게 무엇인가'하는 무력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행복한 것임을 손 교수는 깨닫고 있습니다.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칠순이 다 된 오길남(69) 씨가 최근 미국 의회에서 북에 두고 온 부인과 두 딸을 그리워하며 '통영의 딸' 구명을 호소한 내용이 우리들 가슴을 숙연하게 합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짐승 같은 모습, 불구라도 상관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이라도 좋으니 제발 생명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만 있어다오. 부둥켜안고 단 한 번만이라도 인간의 울음을 흘릴 수 있도록…."
손 교수는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가운데 스스로를 돌보게 된 사연을 일기에 담았습니다. '하루 하루가 너무 사랑스런 오늘,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는 그의 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하겠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2011년 11월 ○○일
내 환자들은 처음에는 걸어서 오지만, 점차 휠체어를 타고 오고, 말소리가 작아지고, 결국 앉지도 못해서 침대째로 오거나 눈 깜빡임이나 손가락을 움직여 의사를 전달한다. 인지기능은 괜찮은 경우가 많다. 자기 뜻을 못 알아들으면 답답해하고, 원하는 자'모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눈 깜박임이나 손가락으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힘'겹'다'.
A는 그런 환자 중 하나다. 올해로 20살이 되는 A는 선천성 근육병을 타고났고, 걸어본 기억은 까마득하다. 척추가 너무 휘어서 갈비뼈가 골반 뼈에 맞닿아 있고, 그래서 앉지도 못한다. 하지만 인지기능은 너무 뛰어나고, 얼굴도 잘생겼다. 힘이 있을 때는 침대에 누워 인터넷으로 수업도 받곤 했다. 그런 A가 병원 응급실로 왔다.
얼마 전 가슴이 답답하다고 왔을 때 3개월 전에 비해 심장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당시 자식의 상태 때문에 어머니는 심장 치료를 포기했었지만, 다시 증상은 심해졌고 힘들어하는 A를 보고 있는 게 더는 견딜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노라고 했다. 심장내과에서 다시 검사한 결과 A의 심장기능은 갑작스레 멈출 만큼 나빠져 있었고, 급성 심근경색까지 와 있는 단계였다. A는 기관절개 시술을 받았고, 중환자실 치료가 끝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뒤 재활의학과로 오게 됐다.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급한 불은 껐다고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이런 환자들은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근경색은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 아닌가. 내 예상은 적중했다.
조금 좋아지는가 싶었던 어느 날, 그날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회진을 하는 중이었다. 잘 잤냐고 얘기를 꺼내는데, 모니터링을 하던 산소 수치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100, 90, 80, 70, 60, 50….' 손 쓸 새도 없이 산소 수치는 절벽에서 뛰어내린 사람처럼 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급하게 산소를 높이면서 CPR(응급소생술)을 준비했다.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움직이는데 갑자기 A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 나 죽기 싫어! 나 죽기 싫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관 절개를 하고 있어서 소리내기는 거의 힘들었다. 게다가 암부배깅(공기주머니로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을 하던 중간에 목소리를 쥐어짜서 소리를 지르다니. 평소에도 너무 힘이 없어서 목소리도 못 내고 손가락으로 환자복 위에 글씨를 써서 말을 전하던 그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A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엄마는 울음을 터트렸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로 A만 침대에 누워, 눈물로 뿌옇게 된 내 시선 뒤로, 정지 영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