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즐러운 콩 타작/나의 보물/유배刑 /

♥수필1-즐거운 콩 타작

요즘 농촌은 가을걷이 끝마무리인 콩 타작이 한창입니다. 우리 집도 지난 일요일 콩 타작을 했습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여 콩 타작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 잘 마른 콩을 몇 단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막대기로 두드리며 콩 타작을 하셨습니다.

'착-착-착-착-착…….'

시어머니의 콩 두드리는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콩이 많은 집은 기계로 타작을 하지만 우리 집은 매년 손으로 합니다. 타작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랍니다. 남편과 나는 직장 다니느라 시어머니를 도울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마음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올해는 기계 타작을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놀면 뭐하노. 내 혼자 해도 며칠 안 걸린다. 걱정마라" 하시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도 막대기 하나 찾아 들고 시어머니 옆에 앉아 콩을 두드렸습니다. 남편은 나의 모습을 보고 "콩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쓰다듬고 있다"며 놀려댔습니다. 얼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습니다. 문득 이런 일을 열흘 넘게 하고 계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도 돕겠다며 마당에 나왔습니다. 딸은 도리깨로, 아들은 막대기로 콩을 내리쳤습니다. 곁눈질로 배운 타작 솜씨가 제법이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배고팠던 어린 시절 콩서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년 가을 꼭 콩서리를 해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콩 타작이 끝났습니다. 남편은 형제들과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 뿌듯하다고 했습니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내년에는 나 혼자서도 콩 타작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서경화(예천군 하리면)

♥수필2-나의 보물

가방에서 나의 보물을 꺼냈다. A5 크기의 보물 속에는 아이들과 보낸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가득 차있다. 보물은 바로 수첩이다.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일이든 속상한 일이든 무엇이든지 적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 수첩을 펼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와 언제 약속이 있는지, 얼마를 지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짧은 명언들과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참 좋은 글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15년 전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수첩들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다. 수첩 하나를 꺼내 읽다 보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그때는 참 힘들다고 적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힘들었던 일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 것을 발견하면 세월이 약인 것 같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수첩은 지난 나의 삶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수첩을 펴고 어떤 생각이든 풀어놓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좋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이 실마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2011년의 달력이 이제 1장 남았다. 내년에는 무엇을 하면서 보내게 될지, 2012년 수첩은 어떤 일들로 채워질지 무척 설레고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수연(구미시 송정동)

♥시1-유배刑

烙印(낙인)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안은 채,

나는 간다, 마음에서조차 먼 그곳으로.

분노, 후회로 혼란스러운 곳으로

자책감에 휩싸이게 하는 곳으로

비는 세차게 내리고

바람마저 거세게 부는 그 멀고도 낯선 곳으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곳으로

부질없는 신세타령에 술잔 기울이게 하는 곳으로

세월이 지나가면 잊어질까

나를 버리면 마음이 편할까

외롭고 허전한 마음 달래 줄 이 없는 그곳으로

조용하게 내 마음 닦을 곳, 그곳으로

조직으로부터의 미움과 버림, 배신감

억울하고 분한 마음 끌어안고

불안하고 공허한 절망만이 함께하는 곳

기한 없이,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깊게 파인 상처투성이 인생

날이 갈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지고

뺨 위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훔치면서

忍苦(인고)의 세월 보내야 하는 귀양살이 그곳으로

하느님, 제게 인내를 주소서!

두려움을 이기는 힘을 주소서!

김수임(대구 수성구 범어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김윤영(대구 달서구 월성동) 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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