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련 남은 거마대학생들 "갈 데까지 가야지"

미련 남은 거마대학생들 "갈 데까지 가야지"

"먼저 간 애들이 이해가 안 돼…. 그래도 나는 갈 데까지 갈 거야."

초조한 듯 골목을 서성이던 20대 남성은 누군가와의 긴 전화통화를 끝마치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이 '거마대학생' 불법 다단계업체 수사결과를 발표한 1일 오후 찾은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

지난달 11일까지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머물렀다는 이곳은 이미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다른 합숙소를 찾아봐도 현관에 다 닳아빠진 신발과 쓰레기만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 사람들은 모두 떠난 뒤였다.

서울시내에서 비교적 방값이 싼 이 지역에 우후죽순 들어섰던 다단계업체의 합숙소는 경찰의 집중단속으로 80% 이상이 문을 닫은 상황.

5천여 명에 달했던 젊은 영업사원들도 120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몇몇 거마대학생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거여동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다세대주택. 몇 군데 남지 않은 다단계 합숙소 중 하나인 이곳에는 밤늦게까지 청년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 2명에게 "이곳 주민이냐"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곧장 "누군데 그런 질문을 하냐. 돌아가라"며 쏘아붙이는 답이 돌아왔다. 이윽고 근처에서 전화하던 일행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인근 업체 교육장에서 판매영업 교육을 받고 온 듯한 남성 5명이 차례로 골목으로 들어섰지만 기자를 보고는 대뜸 "잘 모른다" "녹취하거나 몰카 찍으면 안 된다"고 방어막을 쳤다.

이 일대는 지난 몇 달간 '젊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몰려다니며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동네 분위기를 흐린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외부인과 마주치는 것조차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마천파출소 황인호 소장은 "마천동에만 76곳의 합숙소가 있었다. 합숙소당 20∼30명이 거주했는데, 단속 이후 현재 11곳만 남아 있고 각각 4∼5명이 살고 있는 정도"라고 전했다.

남아있는 이들은 대개 피라미드 형태의 다단계 조직에서 상위 직급까지 올라간 경우다.

자기 밑으로 몇 명만 더 모집하면 목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다단계 업체 관련자 등 249명이 처벌을 받아 조직이 사실상 뿌리 뽑힌 상태에서 이들이 다단계 조직 내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12월까지 할 거야?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

답이 나오지 않을 듯한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청년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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