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奇巖)의 연속 샷, 괴석의 파노라마. 만물상은 바위로 쓴 시, 자연이 그린 정물(靜物)로 비유된다. 수만년 비바람에 의해 다듬어진 자연의 걸작은 반영구적 보존성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신기한 바위 조형물들은 화강암의 절리(節理)과정의 산물이며 전문용어로는 '차별적 두부(頭部) 침식'의 결과로 설명된다. 만물상 하면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빅3로 들지만 전국의 이름난 바위산들도 앞다퉈 암릉미를 뽐내고 있다. 한라산의 영실기암(靈室奇岩)부터 월출산, 천관산, 주작'덕룡산이 만물상 브랜드에 승차해 나름의 특색을 자랑한다. 최근 빅3의 독과점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롭게 부상한 산이 있으니 바로 가야산 만물상이다. 38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영남의 수석전시장'으로 새롭게 도약한 가야산의 비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만물상 개방'대장경 축제 등 가야산 축제 풍성=세상일에 부침이 있다지만 지난 해와 올해처럼 가야산이 주목을 받은 적도 드물다. 우선 그간 은둔의 신비에 쌓여있던 만물상 코스가 지난 6월 12일 38년 만에 베일을 벗었고 올 9월 23일에는 해인사 초조대장경 조성 천년을 기념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렸다. 이 행사와 때를 맞춰 '해인사소리길'도 개통됐다. 홍류동 6㎞ 사찰 진입로에 7개의 다리와 정자, 데크를 조성해 관광객들이 편안히 자연과 교감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합천, 고령은 옛 경남'북에서 일어났던 대가야의 영토였다. 대가야는 가야연맹의 맏형이었고 가야산은 낙동강 중'하류 일대를 통치하던 소국들의 중심이었다.
이런 위상을 기반으로 가야산은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발전했다. 하늘의 신 이질하(夷叱河)와 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는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나라를 열었고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을 해인사에 보관하면서 불교의 성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종교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곳은 항상 시류의 중심이었다. 최치원이 이곳을 은둔지로 삼은 이후 가야산은 고금의 문장가들의 기행과 풍류의 이상향이 되었다.
어느새 계절 끝자락. 산은 겨울 채비를 서두른다. 그동안 미뤄왔던 만물상 산행에 나선다. 봄 신록, 가을 단풍. 좋은 계절을 다 보내고 이제야 산을 찾은 것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백운동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버스들의 행렬, 추위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만물상의 인기가 실감된다.
백운교 등산로 입구에 도열해 있는 등산객들. 우리 일행도 섞여서 한 줄을 보탠다. 끝없이 늘어선 줄은 중턱을 지나서도 위세를 굽히지 않는다.
인파와 씨름하기를 1시간. 드디어 979봉에 이른다. 멀리서 칠불봉과 상왕봉이 일행을 맞는다.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만물상도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중환은 가야산을 답사한 후 만물상을 석화성(石火星)으로 묘사했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 아름답다'는 은유적 표현이었다.
◆남근석'두꺼비'코끼리 바위 파노라마로 펼쳐져=979봉을 돌아서자 만물상은 본격적으로 속살을 펼쳐 보인다. 발밑에선 기운차게 솟구친 남근석이 여심을 흔들고 암벽 밑에선 면벽한 스님의 기도 모습이 숙연하다.
목을 쭉 뺀 거북이는 상아덤 쪽으로 바삐 오르고 두꺼비, 돌고래, 개구리, 코끼리는 금방이라도 바위에서 튀어오를 것만 같다. 활동사진처럼 튀어나오는 바위들의 연출에 산객들의 발걸음은 자꾸 지체된다. 바위 숲에서의 기분 좋은 유희는 상아덤까지 계속된다.
19세기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는 금강산 만물상을 구경하고 나서 "이 장관을 붓으로 묘사할 자신이 없다"고 경탄했다고 한다. 짐작하건대 많은 문인들이 가야산에서 같은 푸념을 늘어놓을 듯싶다.
만물상을 비켜서면서 성터 흔적과 만난다. 삼국시대 축조된 가야산성이다. 산성은 포곡식(包谷式)으로 서장대-동성재-동장대를 연결하는 1만5천척(약 4.5㎞) 규모. 성안에 용기사, 백운사를 품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이 성에서는 신라 말에 이미 승군(僧軍)이 번을 섰고 임란 때 유정(惟政) 대사와 정인홍이 이 성에서 의병활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김창숙, 곽종석이 이 일대에서 항일, 만세운동을 벌였다.
서장대를 내려서자 길은 서성재로 통한다. 이곳은 천신 이질하와 여신 정견모주가 만난 곳이다. 둘은 바위 꽃이 만발한 상아덤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자손을 번창시켰다. 바로 가야국의 시조다.
◆남산제일봉부터 지리산까지 한눈에 펼쳐져=어느새 서성재, 줄을 잇던 인파는 어느 정도 분산되고 등산로도 한결 느슨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일행은 다시 칠불봉을 향해 오른다. 가야성터를 따라 이어지는 칠불봉 등산로는 50도가 넘는 급경사로 유명하다. 30여 분 고투 끝에 산은 드디어 정상진입을 허락한다.
칠불봉은 근래까지 최고봉 대접을 못 받다가 최근 측정을 통해 가야산 최고봉(1,433m)으로 인정받았다. 최고봉답게 사방으로 조망을 열어 놓는다. 남서쪽으로 남산제일봉(매화산)과 지리산 반야봉, 덕유산이 녹색물결로 일렁인다. 북쪽에서는 성주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내친김에 상왕봉으로 내달린다. 상왕봉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牛頭峰)으로 불린다. 3m 차이로 최고봉 자리를 내주었지만 아직도 높이와 관계없이 가야산의 주봉 대접을 받고 있다.
상왕(象王)은 불교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고 가야는 범어(梵語)에서 소를 말하니 우두산(가야산)은 지명에서부터 불교 성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마애삼불상을 거쳐 토산골로 접어든다. 계곡의 물소리가 옅어질 무렵 해인사 독경소리가 정적을 깬다.
소설(小雪)의 절기는 지축을 기울여 해를 일찍 거둬들인다. 일주문의 기둥 그림자도 어느새 동쪽으로 길게 누웠다. 동쪽 서성재 너머 만물상에도 석양이 깃들었다. 봄 녹의(綠衣), 가을 홍상(紅裳). 사실 만물상의 시즌은 누가 뭐래도 봄가을이다. 봄 만물상이 새색시의 수줍은 단장이라면 가을 만물상은 성숙한 여인의 성장(盛裝)에 비유된다.
이제 겨울 초입. 산은 색(色)을 거둬들이고 회색빛 빈 가지들만 정적을 보탠다. 뒤늦게 만물상을 찾은 필자의 게으른 성정에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얻은 것도 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만물상의 민낯(쌩얼)을 보겠는가.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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