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시집온 보우시콜(31) 씨는 일주일에 딱 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대구 달서구생활체육회에서 마련한 댄스교실이 열리는 수요일이다. 그는 이날만큼은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짬을 낸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이국땅을 밟은 지 4년째.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외에는 몰랐던 한국말도 그사이 많이 늘었다. 김치냄새도 익숙해졌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한국생활도 적응했다. 그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집 밖을 나설 때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 때문이 아니라 마음껏 수다를 떨 친구가 없다는 게 아쉽다.
그러나 그는 올 한 해를 신나게 보내고 있다. 4월부터 생활체육회의 댄스교실에 참가하고부터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이곳은 보우시콜 씨에게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날리는 청량제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해방구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비슷한 처지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경쾌한 음악에 따라 신나게 몸을 흔들면 땀도 나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보우시콜 씨를 들뜨게 하는 댄스교실을 찾아가 봤다. 대구 달서구 이곡동 국민생활체육센터 한쪽에 마련된 댄스교실엔 20여 명의 결혼이민여성들이 앞뒤 좌우 간격에 맞춰 줄을 서며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자 스피커에서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맨 앞에 선 달서구생활체육회 홍선희(29'여) 지도자가 시범을 보이자 수강생들이 일제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팔은 들고 다리는 반대로." 곡이 빨라지자 율동도 이에 맞춰 빠르고 커졌다. 4월부터 8개월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고, 20여 명이 펼치는 댄스무대는 마치 'K팝' 열풍에 빠진 외국 젊은이들이 벌이는 외국의 댄스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7, 8곡에 맞춰 춤을 추고 나자, 보우시콜 씨의 이마엔 땀이 맺혔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러나 입가가 올라간 얼굴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보우시콜 씨는 "TV에서 봤던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이곳에서 배우니 신이 난다"며 "이곳에서 배운 춤을 잊어버릴까 봐 집에서 매일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여성 송현동(27) 씨도 "온몸을 격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살이 절로 빠진다"며 "몸매 관리엔 최고"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을 더욱 알차게 보내기 위해 틈만 나면 익힌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댄스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운동도 하게 됐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을 하거나 다른 운동을 시작한 이들도 많았다.
팍논라판(33'태국) 씨는 "활기찬 댄스 때문에 성격도 밝아졌고, 매사 적극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며 "돈 들이지 않고 재미도 찾고 운동도 한꺼번에 할 수 있어 좋지만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은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열성을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힘을 북돋워준다. 홍선희 지도자는 "주부들, 노인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이들만큼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반은 없다"며 "새로운 것을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댄스교실은 한 달에 한 번, 그동안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자체 댄스 경연대회도 열고 있다.
이처럼 대구시생활체육회의 다문화가정 어울림 생활체육지원사업이 결혼이민여성들의 건강 증진과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진행 중인 이 사업은 다문화가정의 생활체육 활동과 사회 어울림 장으로 톡톡히 역할을 해내고 있다. 대구에서는 중구'동구'서구'북구'달서구 등 5개 구에서 이 사업을 펴고 있다.
대구시생활체육회 신원석 씨는 "각 구의 생활체육지도자들을 활용해 다문화가정과 일반 아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패밀리 데이, 생활체육 캠프, 다문화가정 어울림 생활체육 축제 등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구에서 운영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은 티볼, 풋살, 볼링, 음악 줄넘기, 요가, 에어로빅, 배드민턴, 게이트볼, 축구 등으로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꾸준하게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종목들로 구성하고 있다.
딱딱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직접 몸을 쓰고 때로는 호흡을 맞춰야 하는 스포츠 활동이란 점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결혼이민여성들의 참여 열기를 높이고 있다. 대구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지역의 다문화 가족지원센터, 복지관, 학교 등으로부터 장소 사용 협조를 받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결혼이민여성들로부터는 경비를 받지 않는다.
여름이나 방학기간에는 생활체육 캠프를 열어 트레킹, 래프팅, 레크리에이션 등 생활체육의 범위를 넓히고, 11월에는 4월부터 각 구 생활체육회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의 결산 및 흩어져 있던 다문화가정을 한곳에 모아 어울림 생활축제를 연다.
지난달 25일 서구국민체육센터서 열린 축제에는 300여 명의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가족 간 화합을 다졌다.
대구시생활체육회 서진범 부장은 "바깥 출입을 꺼리는 등 소극적인 생활과 비용 부담 때문에 운동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결혼이민여성 등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대상으로 무료로 다양한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가르쳐줌으로써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 건강한 삶, 활력이 넘치는 생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