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제시대 독자화풍 이쾌대

일제시대 리얼리즘 화풍 속으로

# 해방후 격동기 사회, 현대 감성으로

대구미술관 4,5전시실에서 '이쾌대'의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쾌대(1913~1965)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1920년대 말 미술을 배우기 시작해 1930년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귀국 후 민족의식을 내세운 작품에 몰두했고,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리얼리즘을 개척했던 화가다. 화단이 향토적 소재에 치우쳐 있을 때 이쾌대는 당시 시대상을 장대하게 표현한 '군상'을 비롯한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갔다. 그는 인민군측 종군화가로 활동하다가 포로로 수용소에 수감, 1953년 남북포로교환 때 월북했다. 196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8년 월북작가 해금조치를 통해 비교적 늦게 우리 앞에 나타난 화가다. 주제에 대한 독특한 발상, 신비한 고전미와 현대적 감성, 해방 후 격동기에 대한 통찰과 비전을 작품 속에 구현한 한국 근대미술사 속에서 보기 드문 경향을 보여주는 화가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활동과 인생의 행보보다는 예술적 창조 과정 속에서 예술가의 고민과 노력,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추구해가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선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쾌대의 드로잉이 특히 주목을 끈다. 이쾌대는 1930년대 일본 유학시절부터 그려왔던 인물 데생, 캐리커처, 작품 연구 등 미공개 작품을 포함한 60여 점의 드로잉이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작품에 서명할 사인을 연습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작품과 관련한 단상들을 그대로 옮기는 등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힘있는 드로잉과 세밀한 묘사는 그의 창작 태도를 보여준다. 아내 유갑봉을 그린 초상과 스케치들, 성북회화연구소 시절 그의 제자였던 동양화가 심죽자를 그린 초상 등 완성도 높은 인물상 등이 전시된다.

이쾌대는 누구보다 인물화에 대한 애착을 가졌던 화가다. 그는 향토적인 소재와 양식을 결합시켜 민족의 정서를 인물을 통해 보여주게 된다. 인물을 통해 내면과 시대 상황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 또 일제시대 들어온 유화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수용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푸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에는 유화 물감과 동양 모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 소재를 배경으로 두루마기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동양적 선묘로 그림으로써 유화를 자주적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자신만만한 눈빛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형 이여성을 그린 인물화도 전시된다. 독립운동가이자 화가, 언론인이었던 이여성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참가했다.

이번 전시에는 총 네 점의 자화상이 등장한다. 시대적 물결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는 '푸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이들 자화상을 서로 비교해봄으로써 그 시대 작가의 고뇌를 읽어낼 수 있다.

월북작가인 이쾌대의 작품은 한동안 금기시돼 왔지만 아내 고 유갑봉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의 보존으로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쾌대의 유화 및 드로잉 등 다수의 작품이 대규모로 전시되는 보기 힘든 전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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