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 中어선 본거지 가다 산둥반도 스다오항
'불법 조업 중국 어선들의 본거지.'
중국 산둥성 동쪽 끝에 있는 어업기지 스다오(石島)항에는 이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어 있다.
15일 아침 찾아간 스다오항은 겉모습만 놓고 본다면 한국의 여느 어항(漁港)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림잡아도 1천여척이 넘어 보이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항구 주변을 가득 메워 장관을 연출했다.
선원들은 부두에 배를 붙이고 잡아온 물고기를 삽으로 퍼내 플라스틱 상자에 연방 퍼올려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다. 부둣가에 줄지어 선 트럭들에는 가자미, 갈치, 아귀, 청어 같은 물고기들이 화물칸에 가득 실렸다.
이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어항에 '불법조업의 본거지'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한국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붙잡힌 중국 어선 가운데 이곳에서 출항한 경우가 특히 많기 때문이다.
해경이 올해 들어 10월까지 나포한 중국 어선은 294척. 이 가운데 한국과 지척인 산둥성 선적이 148척으로 절반이 넘는다.
스다오항이 산둥성을 포함한 중국 북방에서 가장 큰 어업 기지 가운데 한 곳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많은 불법조업 선박이 이곳에서 출항한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것이다.
서해에서 이청호 경장이 살해당한 사건 이후 이곳에는 강한 긴장감이 흐르는 듯했다.
배에 타고 있던 한 선원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한 후 조심스럽게 한국 해경 살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얘기는 들었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많은 선원도 "모르는 일이다", "들어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해경 살해 사건으로 스다오항에 닥칠지 모르는 후폭풍을 우려하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 어민들도 법 집행에 나선 경찰관을 살해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어렵게 만난 한 선장은 "(해경 피살 사건은) 일방적인 사건이 아닌가"라며 "사실 한국이 자기 수역에서 법 집행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둣가에서 만난 한 생선 하역 노동자도 "한국 경찰관을 죽인 것은 당연히 야만적인 행위로 잘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중국 어민들 사이에 경쟁이 너무 심해져 한국으로 넘어가는 배가 나오는 것 같다"면서도 "한국이 계속 단속 강도를 높이고 벌금도 높이면 어민들도 생존을 위해서는 잡혔을 때 더욱 강하게 저항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른 선원도 "한국에 잡히면 벌금이 30만위안(약 5천460만원)이나 되고 중국에 돌아와서도 또 처벌을 받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도망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비록 일부라고 하지만 적지 않은 스다오항 선적 선박들이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자주 침범하는 데는 지리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 최동단에 있는 스다오항은 한국의 인천항과 불과 38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150㎞가량만 동쪽으로 나가면 한국과 중국 수역의 경계가 나온다. 시속 30∼40㎞의 느린 속도로 달려도 출항 후 다섯 시간이면 어족 자원이 풍부한 한국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일부 어민들이 떳떳지 않은 행위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한국의 어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바로 '생존'을 위해서다.
중국의 수산업은 이미 '레드 오션' 단계에 진입했다.
지난 2001년 중국과 한국이 어업협정을 맺어 서해의 수역을 나눌 때 중국의 어선은 이미 한국의 8만6천척보다 6배나 많은 51만5천척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말에는 어선이 100만척까지 늘어났다. 전국적으로 어민도 3천만명이나 된다.
과열 경쟁은 남획으로 이어져 중국 근해 어장의 상당수가 이미 황폐화됐다.
따라서 소형 어선을 제외한 중·대형 어선은 고기잡이를 위해 먼바다로 출항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국인들은 중국 어업 문제를 요약해 '승다죽소(僧多粥少)'라고 말한다. 즉, 중은 많은데 먹을 죽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이날 스다오항 부두에 올려진 많은 물고기 중에는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물고기를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안에서는 양식업을 육성하는 등 어업의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 어민들의 생존 논리가 타국의 어장을 함부로 침범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날도 스다오항 부둣가에는 화물칸에 물고기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하나씩 바삐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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