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석유·자원·전기 관련 공직 36년 종사 '에너지通'…한준호 삼천리 그룹 회장

"사람은 들 때와 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진두지휘를 해야 할 때인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할 때인지 사리분별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추해지지 않습니다. 정치요? 왜 권유가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학계, 관계, 종교계까지 모두 정치로 귀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빠지고 싶었어요. 제가 들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었거든요."

이명박 정부에서 개각이 있을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던 한준호(66) 삼천리 회장은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만큼 반듯한 인상이었다. 아들뻘 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예의를 갖췄다. 소파에 등을 기대거나 다리를 꼬지도 않았다. 처음 취한 자세 그대로 대화를 이어갔다.

고위 공직자에서 민간기업 CEO로 변신한 그는 행정고시 10회 출신이다. 동력자원부 석유정책국장, 상공자원부 자원정책국장을 거쳐 중소기업청장,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역임한 '에너지통'이다. 한전 사장 공모 때 경쟁률은 무려 35대1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한전 사장 임기 3년을 꽉 채웠을 때였어요.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끝까지 같이 가자'고 그러시더군요. 대통령이 사석에서 '한 사장은 내 사람도 아닌데 일은 참 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나왔습니다. 임기를 못 채우면 흠결이지만 임기를 마친 것은 임무를 완수한 표창이니까요."

불교 신자(진각종)인 그에게 위덕대학 총장 자리를 누군가 추천했다. 후학 양성에 힘쓰는 것도 좋은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대학에서도 총장직 요청이 들어올 때였다. 그 때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으로부터 러브콜이 왔다. 물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나기 전부터 이 회장과는 인연이 있었다. 공직 36년을 에너지 관련 업무에 종사한 '에너지맨'이었으니까.

한 회장은 그의 멘토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진념 전 부총리,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의 답변은 이랬다. "평생 정책을 했으니 이제는 민간에서 실행을 해보는게 어떻겠소?" "협회나 공기업을 좇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실력을 발휘해보지 그래요?"

2007년 그는 56년 전통의 삼천리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신(新) 성장동력사업의 기획'발굴 임무를 맡았다. 이 회장은 한 회장을 적임자로 본 것이다. "석탄, 연탄에서 시작된 에너지사업은 이후 도시가스사업으로 전환하게 됐죠. 삼천리는 국내 굴지의 에너지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스 사업은 배관을 넣고 투자를 한 15년 뒤부터 이익을 내는 보급사업입니다. 신도시가 아니면 새 시장 확보도 어렵고,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펼치게 됐지요."

그는 집단에너지, 발전소, 물이라는 3가지 사업 계획을 내놨다. 전기나 가스가 아닌 발전소 폐열, 쓰레기 소각열을 에너지화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은 광명역세권과 소하'신촌지구에 냉'난방열을 공급하게 된다. 에너지기업의 꿈인 발전소 건설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삼천리는 포스코건설, 한국남동발전과 함께 LNG(천연가스) 복합화력발전소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상수도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최강 수준으로 평가받는 삼천리의 배관 기술 덕분이다. 누수율을 낮춰 돈이 땅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 배관기술과 IT를 접목하는 물 사업을 기획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신문을 통독하고 에너지 관련 책을 섭렵하며 트렌드를 읽는다. 하지만 모든 생각은 산에서 정리한다. "바위, 흙, 나무가 두루 섞여 산이 되죠. 혼자 잘 나려고 하면 안됩니다. 푸근한 산에서 겸손과 여유를 배우고 삶은 반추하고 반성합니다. 산에 오르세요."

한전 재직 시절, 대구 동성로의 전주 지중화 사업이라는 '작은 선물'이 그의 작품이다. 고향에 대한 그의 마음이다. 한 회장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초교, 경북중'고,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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