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아라비안 나이트와 글쓰기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의사 수필가들이 모인 의사수필가협회에서 수필집을 만들었기에 몇몇 지인들에게 보내드렸다. 책을 받은 분들 중 한 분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어쩌면 취미로 시작한 의사들의 글쓰기가 글을 쓰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무색해하게 만든다는 인사성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과연 글쓰기가 취미로 쓰는 것일까 하고.

올해 세계육상대회를 대구에서 치르는 덕분에 마라톤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앞에는 선수들이, 뒤에는 일반인들이 달렸다. 선수들도 열심히 달렸지만 뒤떨어져 달리는 일반인들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다.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책이 있다. 샤리야르라 왕이 거짓으로 사냥을 간다고 말하고 궁으로 뒤돌아와서 사랑하는 왕비가 노예들과 놀아나는 것을 본다. 분노한 왕은 그들을 처형한 후 매일 밤 처녀를 한 사람씩 불러다가 잠자리를 같이하고는 이튿날 죽여버린다. 이런 일을 3년 동안 계속하자 형 집행대신의 딸인 샤라자드가 왕과의 잠자리를 자원한다. 그녀는 왕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날이 밝아도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이야기에 매료된 왕은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를 살려주고 그녀는 다음날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목숨을 유지한다. 많은 날을 그렇게 보낸 왕은 결국 그녀를 용서하게 되고 다시는 처녀를 왕궁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 글쓰기와 관계되는 중요한 점이 있다. 만약 왕이 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흥미를 잃으면 그녀는 다음날 당장 목이 잘린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왕이 흥미를 잃지 않을 만큼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어야 한다. 얼마나 처절한가. 모숨 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어찌 글쓰기를 취미로 대충 쓰겠는가. 생명을 걸어놓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샤라자드 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아마추어 선수들만큼은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말이다. 올해도 모두 뛰고 또 뛰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이룬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허망한 느낌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룬 분이나 이룬 것이 없는 분이나 나름대로는 한 해를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을 것이다. 어찌 이룬 것이 없다고 하여 한 해를 취미로 살아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살아온 것만도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서로를 위해 박수를 쳐주자.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너 참 대단하구나"하고 말하면서.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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