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20일 오후 지역 한 사립대 정문 앞. 기자는 오가는 대학생 30명에게 "김정일이 언제 죽었고, 김정은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들 가운데 19명만이 "17일에 사망했고, 김정일의 아들이다"라고 제대로 답했다. 나머지 대학생들은 "김정일이 병에 걸려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안다"고 답하거나, "김정은은 국내 인기 여배우다. 그런데 북한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대학생 장모(22) 씨는 "오늘까지 기말고사를 치르고, 다음달에 외국에 어학연수를 받으러 나갈 준비를 하느라 최근 신문, TV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며 "나중에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때문에 환율이 급등했다는 소식에 외국에서 쓸 돈을 환전할 걱정만 가득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20대 젊은층에게 김정일 사망은 남의 일로 치부되고 있다. 게다가 김정일의 사망조차 모르는데다 김정은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관심한 젊은층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조문과 애도로 들끓었던 그때의 젊은층과는 상반된 경향인 것.
이날 다른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4) 씨는 "김정일 사망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다. 그는 "김정일의 사망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 등의 문제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등록금이나 취업 문제만큼 몸에 와닿지 않는다. 어차피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 아니냐"고 시큰둥해 했다.
남북 경색 등으로 인한 전쟁 우려감이 나돌면서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다. 내년 2월 군 입대를 앞둔 박모(20) 씨는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이 무력도발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본 뒤, 머릿속은 온통 '입대를 미루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걱정했다.
20대 직장인들도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온통 관심사는 북한과의 전쟁 우려에 따른 주가 폭락 등 경제위기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점에 맞춰졌다. 회사원 구모(29) 씨는 "연말 성탄 랠리를 기대했는데 김정일의 사망으로 모든 게 허사가 됐다. 이 같은 고민을 얘기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다"고 했다.
이같이 10여 년 전 젊은이들과 현재의 젊은 층의 세대 차이가 확연한 이유에 대해 한 40대 직장인은 "17년 전 김일성 사망 당시 대학생들이 평양에 조문단 파견을 강행했고, 이를 반대하는 대학생들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며 서로 갑론을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 이슈에 개입한 것과 비교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무감각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만큼 사회 문제에 대한 참여 의지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구참여연대 박인규 사무처장은 "김정일의 사망으로 우리나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지만 정작 젊은이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보고 있다"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 이슈에 대해 SNS, 블로그 등 개인 온라인 공간에 자기 생각을 끈적이다 마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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