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파리나 런던 같은 데 좀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만날 말라리아 모기 걱정에 황열병'고산병 약만 안 챙기고요. 우아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경쟁국들을 앞서기 위해선 CEO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협상하고, 빠른 결단을 내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3년 반 동안 100만㎞, 지구 23바퀴를 돌았다는 남자는 해외여행 많이 다녀서 좋겠다는 농담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달 들어서만도 보름 동안 아프리카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남미 볼리비아를 돌고 왔지만 다음주에 다시 아프리카로 날아가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차에 적응할 시간조차 없다는 게 김신종(61)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김 사장과 인터뷰는 꽤 어렵게 이뤄졌다. 2008년 7월 취임 후 몇 차례나 약속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해외 출장 때문에 연기됐다. 지난 8월 연임 확정 이후에는 시간이 좀 날 듯했지만 국회 국정감사가 발목을 잡았다. "한 달에 보름 정도는 해외에 머무를 정도로 현장에서 뛰었습니다. 하지만 '부실 자원외교' 비판이 거세게 일어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자원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거든요.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일한 만큼 세월이 흐르면 공과가 드러날 겁니다."
그의 취임 이후 광물자원공사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2008년 말 '광물자원공사법' 개정안이 통과돼 자본금이 6천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었고, 광업진흥공사였던 명칭도 바뀌었다. 민간의 자원 개발을 돕는 위치에서 직접 자원 개발'확보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해외 실적도 괄목할 만하다. 유연탄'철'니켈 등 6대 전략 광종(鑛種)의 자주개발률을 23%에서 29%까지 끌어올렸고, 남미'아프리카에서 구리'우라늄에 집중투자한다는 '2+2 전략'으로 칠레'페루'멕시코'니제르 등에서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했다. 특히 '외교 무기'로까지 떠오른 리튬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의 탐사'개발사업에 적극 진출해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현재 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프로젝트는 16개국 36개, 총 투자금액은 올해 6천700억원을 포함해 1조9천억원에 이릅니다. 최근에는 남아공 등지에서 희토류(稀土類) 선점에 전력을 쏟고 있고요. 해외법인의 외국 증시 상장 등을 통해 2020년 세계 광물 메이저 20위권에 진입할 계획입니다."
1978년 행정고시 22회에 합격한 김 사장은 2007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에너지'자원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원자력발전과장, 전력산업구조개혁단 과장, 에너지산업심의관, 전기위원회 사무국장, 산자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지 28년 만인 올해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의 학구열도 갖췄다.
"공직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편했던 기억은 한순간도 없습니다. '돌아보니 슬픔과 수고뿐이었다'는 성경 구절이 떠오릅니다. 대만과의 단교 이후 1994년 타이베이 한국대표부에 파견됐을 때에는 자동차 수출 쿼터를 되살린다고 애를 먹었고, 국장 시절에는 2003년 부안 방폐장 사태 때문에 고생 꽤나 했지요. 한전의 자회사 분리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김 사장은 안동 임하면 천전리가 고향이다. 경북의 대표적 유림인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반변천에서 멱 감은 실력 덕분에 해병대에 가서도 덜 혼났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땐 공자 왈 맹자 왈,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같은 단어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죠. 철들고 보니 독립운동가 김대락'김동삼 선생 등 만주에서 고생하신 집안 어른들에 대한 자부심도 적지않습니다." 김 사장의 선친은 김시박 전 경북도의회 부의장이다.
건강을 위해 몇 년 전부터 매일 아침 108배를 올린다는 김 사장은 경북고 졸업 후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다가 고려대 행정학과로 편입, 졸업했다. '지행상방(志行上方) 분복하비(分福下比)'가 좌우명이다. 뜻과 행실은 위를 향하고, 복은 아래에 견줘 살겠다는 다짐이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부 선수로 뛸 만큼 운동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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