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는 녀던길이 있다. 도산서원에서 낙동강 상류 굽이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퇴계 이황이 청량산을 오가던 오솔길이다. '녀던길'은 '예던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예다'는 '가다'의 옛말이니 '녀던길'은 '옛 성현이 가던'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녀던길이란 말은 퇴계의 시 '도산12곡'에서 유래한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녀던길 앞에 있네/ 녀던길 앞에 있으니 아니 녀고 어쩔고'란 구절이 그것이다.
녀던길은 퇴계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길이다. 중국의 주자(朱子)가 무이산을 예찬했듯이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했던 청량산을 무척 사랑했다. 도산서원은 물론 농암 이현보의 종택과 이육사문학관 등 우리 역사 이야기들이 서려 있는 옛길이기도 하다.
퇴계가 청량산을 그토록 마음에 두고 다닌 까닭은 '유산(遊山)은 독서(讀書)와 같다'고 했던 그의 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퇴계의 녀던길 걷기는 그렇게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인에게 있어 소요와 산책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과 야스퍼스, 베버, 괴테 등이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 독일판 녀던길인 셈이다.
칸트의 어김없는 마을길 산책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으며, 니체는 심오한 영감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인 다산초당에서 강진 백련사까지 오솔길을 걸으며 목민(牧民)을 생각했다고 한다.
퇴계는 훈구척신 세력들이 국정을 농단해 선비들이 참혹한 화를 당한 16세기 사화(士禍)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타락한 시대의 극복을 위한 해결의 단서인 인간의 심성에 대한 치열한 고뇌에 잠겼을 법하다.
퇴계가 다져놓은 이 녀던길은 후일 조선의 선비들에게 생애 한번이라도 걸어보고 싶었던 순례길처럼 인식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인간의 문제란 퇴계가 번민하던 500년 전의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일까.
또 한 해가 기운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왔으며, 내년에는 또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세모에 가슴으로 다가서는 퇴계의 녀던길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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