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는 저 혼자서는 돌 수 없다.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한다. 미풍이라도 불어주면 잠깐 돌아가다가도 바람이 멈추면 따라서 멈춘다. 그러나 바람이 안 불어도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 내가 앞으로 뛰어나가면 된다. 바람이 불어주지 않고 스스로 뛰지도 않으면 바람개비는 돌아갈 수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노라면 큰일이 터지거나 책임질 일이 생기면 스스로 결단하고 책임지기보다 남에게 물어보고 눈치 봐가며 움직이는 보신(保身) 풍토가 번지고 있다. 돌지 않는 바람개비처럼 바람 탓만 하고 스스로 앞으로 뛰어나가 바람개비를 돌리는 활기찬 돌파력을 보여주는 지도계층이 없다. 사회가 침체되고 멈춰 서게 된다.
인터넷 공간의 젊은 세대들은 그런 세태를 재빨리 뚫어보고 풍자한다. 묵은 개그 같지만 세상을 보면 낡은 풍자도 아니다.(몇 가지는 본란이 지어내 봤다.)
'사무실 안에 뱀이 들어왔을 때 조직마다 대응하는 해결 방식은?'
현대그룹:절차고 뭐고 뱀부터 때려잡아 놓고 본다.
삼성그룹:뱀에게 떡값을 줘서 해결한다.
LG그룹:삼성과 현대 하는 걸 지켜보고 결정한다.
애플:뱀 잡는 방법을 특허 신청 낸다.
한나라당:북한 소행이 틀림없다고 성명을 발표한다. 그래도 안 되면 뱀에게 돈 봉투를 돌린다.
박원순:안철수를 불러온다.
경찰:물대포를 쏠 것인지 시위대와 의논한다.
통합민주당:노무현 무덤에 가서 물어보고 온다.
종북 단체:김정은에게 대응 조치를 물어본다.
안철수:과외 선생들 얘기 들어보고 결정한다.
풍자에는 과장이 섞인다. 그러나 과장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비판 감각은 나름 따갑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기보다 이해가 얽히는 주변 인물과 세력, 돈의 힘에 기대 쉽게 난관을 벗어나고 덕 볼 것만 챙기는 풍토를 비판하고 있다. 지도층이든 정치세력이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고 내 힘으로 돌파하겠다는 쿨한 풍토가 보이지 않으니 풍자로 조소하는 것이다.
그러한 풍자들은 한마디로 기성세대에게서 본볼 게 없다는 반발심을 나타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비대위만 해도 그렇다. 멈춰선 바람개비 상태다. 기대보다 세차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 민심이란 바람이 맞불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당(?) 안에서조차 내분으로 티격대는데 바깥 민심이 바람을 일으켜 줄 리가 없다. 바람개비가 몇 바퀴 돌기도 전에 일부 비대위 위원의 탈퇴 요구에 이어 돈 봉투 폭로에다 당 해체 주장까지 나오면서 금 가는 소리만 내고 있다.
이름만 비상대책위지 일사불란 앞으로 치고 나가 바람개비를 돌려 보이겠다는 새 바람의 결단은 안 보이고 어디선가 마파람이라도 불어와 주겠지라는 안이함만 느껴진다. 모처럼 세차게 돌아가리라 기대했던 바람개비가 멈춰져 보이는 건 당연하다. 국정 운영의 주체인 집권 정부가 야당의 포퓰리즘을 따라하다 못해 이제는 한 발 더 앞서서 더 퍼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주체성 없는 물어보기와 따라하기의 표본이다.
미래를 까먹는 포퓰리즘은 우선은 공짜니까 받아는 먹되 속 민심까지 내주지는 않는다. '이건 아니다'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가난하다고, 포퓰리즘이 우선 아쉽다고, 정신까지 어리석은 것은 아닌데 집권당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무뇌족(無腦族)처럼 내 생각은 없이 이쪽저쪽 뱀 잡는 방법을 물어봤자 대답 또한 저마다 제 기준으로 답을 준다. 우문우답이 될 뿐이다.
주체적 자신감 없이, 책임지는 각오 없이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남의 세력, 남의 힘에 묻고 기대는 조직과 지도층들이 늘어날수록 민심의 맞바람은 약해진다. 민심이라는 큰바람을 타든지 아니면 서로서로 앞으로 달려나가야 활기찬 바람개비들이 곳곳에서 신바람 나게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낡은 세(勢)들은 돌고 있는 바람개비조차 멈춰 세우고 있으니 문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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