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한민국은 지금 '반값 열풍'…"근데 반은 거품이었어?"

반값의 비밀은 '중간 유통단계'에 있었네

대한민국은 지금 반값 열풍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반값 열풍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반값 등록금에서 촉발된 반값 논쟁은 반값 전'월세, 반값 통신비 등으로 확산됐다. 또 소셜 커머스에서 시작된 기업들의 저가 마케팅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대되면서 경쟁적으로 반값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의 경제난을 반영하듯 반값 상품들은 출시되자마자 매진이 될 정도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 단면이 투영된 반값 열풍을 조명했다.

◆반값 등록금'통큰 치킨이 촉발한 반값 열풍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반값 등록금이었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서민들의 생활고를 반영하듯 반값 전'월세, 반값 통신비 등으로 확산되면서 반값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부산시는 빈집을 리모델링해 반값에 지방 대학생'저소득층 등에게 임대해 주는 반값 전'월세 대책을 발표했다. 또 통신비 인하 요구가 거세지면서 지난해 저가 이동통신사들이 반값 요금을 내걸고 영업에 들어갔다. 또 홈플러스가 통신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제4 이동통신사가 올해 선정될 예정이어서 SKT'KT'LGT 통신 3사가 독점하고 있는 통신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유통업계에서는 통큰 치킨이 반값 열풍의 진원지가 됐다. 2010년 12월 롯데마트가 내놓은 통큰 치킨의 후폭풍은 거셌다. 롯데마트는 통큰 치킨을 필두로 통큰 상표를 단 PB(Private Brand) 제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통큰 속옷'통큰 갈비'통큰 카레'통큰 짜장'통큰 팝콘'통큰 돈가스 등 롯데마트가 내 놓은 통큰 상품은 20종을 훌쩍 넘어섰다. 통큰 넷북'통큰 주식 등 유사 상품들도 쏟아지면서 통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통큰 치킨은 대형마트의 반값 경쟁을 촉발시키는 촉매가 됐다.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에 맞서 홈플러스는 1천원짜리 '착한 생닭'을 출시하며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였다.

◆유통업계는 반값 전쟁 중

유통업계 반값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TV 분야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반값 TV를 내놓으면서 반값 TV가 대형화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24인치에서 시작된 반값 TV가 32'37인치로 점차 커지고 있는 것. 반값 TV 전쟁은 지난해 초 롯데마트가 24인치 컴퓨터 모니터 겸 TV를 29만9천원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홈플러스가 중국산 22인치 LED TV를 29만원에 들고 나와 맞불을 놓자 롯데마트는 49만9천원짜리 32인치 LCD TV로 대응했다. 이마트는 49만9천원의 32인치 LED TV인 '드림뷰'로 반격에 나섰다. 이에 롯데마트가 32인치 '통큰 LED TV'를 선보이자 홈플러스는 32인치 LCD TV를 내놓았고 오픈마켓인 11번가는 37인치 풀HD LED TV인 '쇼킹 TV'를 49만9천원에 출시했다. 여기에 맞서 이마트가 이달 6일부터 '드림뷰' 2차 판매에 들어가자 11번가는 가격을 5만원 낮춘 '쇼킹 TV2'를 출시해 이달 11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반값 품목도 식료품과 TV를 넘어 휴대전화'커피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반값 원두커피와 반값 휴대폰을 선보인 데 이어 이달 5일부터는 영국산 프리미엄 도자기와 뉴질랜드산 프리미엄 꿀을 반값에 판매하고 있다. 또 홈플러스는 지난해 30만원대 골프클럽 세트를 선보였다.

반값 경쟁에 새롭게 가세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대형마트와 인터넷쇼핑몰에 이어 가전양판점인 전자랜드가 이달 6일 반값 노트북을 내놓으면서 반값 경쟁에 합류했다. 또 애경은 식자재 시장 진출을 위해 이달 9일 가격을 확 낮춘 주방세제인 '부라보 에코'를 출시했으며, 훼미리마트는 이달 15일까지 설 선물세트 450개를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 인터파크도 국내 중소기업과 연계해 중저가 TV를 선보일 예정이며 컴퓨터제조업체인 TG삼보도 보급형 TV 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값 상품 약인가, 독인가

반값 상품은 고물가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출시되자마자 매진되는 반값 상품이 속출하고 있다. 11번가가 500대 한정으로 출시한 '쇼킹 TV'는 5분여 만에 매진됐다. 지난해 이마트가 내놓은 '드림뷰' 5천 대는 3일, 롯데마트의 '통큰 LED TV' 2천 대는 2시간 만에 완판됐다.

하지만 반값 상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반값 상품이 많을수록 소비자 권익이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반값 상품이 소비자들의 지출을 부추겨 씀씀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가전제품 전문점 하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2인치 LED TV 판매량이 9~11월 평균 판매량보다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반값 TV가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 TV 시장을 키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반값 상품이 품질이나 충분한 수량 확보 없이 미끼성 상품으로 이용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소비자 불신 등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품질 등의 문제로 구설에 오른 반값 상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6월 통큰 자전거 8천500대를 리콜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리콜 사유는 납품업체가 KC 재인증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통큰 자전거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품질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3월 '착한 LED 모니터'를 출시했다 허위'과장 광고로 손가락질 받았다. 출시 당시 모니터 양쪽에 출력 2와트의 스테레오 스피커를 갖췄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지 않아 문제가 됐다.

◆반값 열풍에 담긴 우리 사회 자화상

반값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알뜰 소비 경향과 가격파괴형 상품을 앞세워 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는 유통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겨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반값 열풍의 이면에 서민들의 생활고가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반값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반값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또 반값 열풍에는 소비자 주권과 상생 발전이라는 화두도 담겨 있다. 통큰 치킨은 출시 당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프랜차이즈업체를 비롯해 치킨업계 영세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 통큰 치킨이 출시되자 치킨업계 영세상인들 사이에서 롯데그룹 상품의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부당 염매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파장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나섰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통큰 치킨은 상생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롯데마트는 출시 5일 만에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다. 영세업체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소비할 권리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또 반값 열풍이 중소업체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유통업체가 힘의 우위를 앞세워 납품업체에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유통질서가 무너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초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소매점 납품 중소기업 거래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업체의 72.8%가 과거와 같은 불공정행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으로는 ▷특판행사 참여 강요(36%)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34%) ▷판촉 비용(광고비'경품비'신상품 판촉비) 부담 강요(28%) ▷부당 반품(26%) 순으로 나타났다. 또 납품 중소기업의 56.4%는 '판매 수수료율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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