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고맙습니다."
응엔 반 타인(26'베트남) 씨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인사말 정도만 가능하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온 뒤 죽도록 일한 그에게 한국어를 배울 여유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 돈만 벌면 되지. 열심히 일만 하자'며 스스로 위안 삼고 일했지만 큰 시련이 닥쳤다. 타인 씨는 지난해 9월 공장 사람들과 출장을 갔다가 숙소에서 미끄러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수술할 돈은커녕 베트남으로 돌아갈 비행기삯도 없는 그는 세상이 점점 원망스러워진다.
◆어부 청년, 한국에 오다
타인 씨의 고향은 베트남의 작은 도시 하틴(Hatinh)이다. 집이 바닷가 근처에 있었던 타인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고기를 잡았다. 올해 66세인 부모님은 힘이 없어 일을 하지 못했고 타인 씨가 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면 한 달에 한국 돈으로 6만원 정도 벌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베트남의 작은 어촌에서 가난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진 한국의 모습은 그에게 희망의 땅이었다. "드라마 속 한국은 정말 아름답잖아요. 부자 나라,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면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타인 씨의 부모님은 낡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500달러를 빌렸다. 아들의 인천행 비행기표를 끊기 위해서였다. 그는 왕복 티켓을 사지 않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빚으로 시작한 출발이었다. 2011년 7월,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아 타인 씨는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경기도 김포의 한 가구공장에 취업한 그는 하루 종일 일만 했다.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는 현관문과 각종 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공장이었다. 오전 8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대구와 부산, 전국 각지로 가구를 싣고 출장 배달을 가는 날도 잦았다. 사고가 난 것도 출장 배달을 떠났던 날이었다. 밤 12시쯤 타인 씨는 일을 마치고 여관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다가 바닥에 있는 물기 때문에 미끄러졌다. 다시 일어나 걷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아팠지만 그는 묵묵히 다음날 가구 배달을 했다. 100㎏ 가까이 나가는 무거운 가구를 자꾸 옮기자 결국 허리가 망가졌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허리가 아파요"
타인 씨는 주변 사람에게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배워 공장 사장에게 말했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다가 다쳤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부족한 한국어로 이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주일 넘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자 사장은 그를 내쳤다. "일하다가 출장 가서 다친 건데, 사장님은 '무조건 나가라'고 했어요. 사장님이 미웠어요." 그는 혼자 힘으로 병원에 갔다. '1345 외국인종합안내센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려 했지만 언어 장벽은 높았다.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베트남에 가야 했다. 고용노동부에 구직 등록을 한 뒤 그는 베트남 하노이로 갔다. 두 번째 비행기표 값과 병원 검사 비용 때문에 타인 씨는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대형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고 "허리 뼈가 부러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만약 베트남에서 수술을 받으면 3개월 안에 한국에 돌아갈 수 없어 비자가 만료되는데다 엄청난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아픈 몸을 끌고 지난해 12월 다시 한국에 왔다.
구직 활동을 할 때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아픈 노동자'를 반기는 사장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군의 한 섬유공장에 직장을 잡았지만 아픈 허리 때문에 일주일 만에 쫓겨났다. 주변 베트남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찾았고 대구의료원을 찾아 다시 검사를 받았다. "요추 4번, 5번에 허리 디스크가 생겼네요. 전문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가난한 부모는 아들 때문에 우리 돈으로 1천만원이 넘는 빚을 졌고 "돈 벌어 오겠다"는 아들은 타국에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타인 씨는 한국에서 처음 맞는 설을 병원에서 보냈다. "베트남도 음력 1월 1일이 설날인데, 가족들이 그립고 또 미안해요." 그의 새해 소망은 빨리 수술을 받고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다. 허리 수술비 600만원만 있으면 스물여섯 살 타인 씨는 '부자 나라'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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