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시간인데 전화벨이 울렸다. 교단에서 40년 가까이 학생들을 시인의 가슴으로 설레게 하는 내 은사의 전화였다. 학생들에게 고은 시인의 '눈길'이란 시를 가르치다가 갑자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더라는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가끔씩 시골을 다녀오실 때면 온통 눈으로 덮인 듯 새하얀 머리를 비녀로 쪽지고, 홀쭉한 등이 꼬부라진 아흔의 어머니가 아득한 들길에 서서 예순이 넘은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오늘 아침, 마치 눈길 위에 펼쳐지듯 생각나더라는 것이다. 잠시 전화기에 침묵이 흘렀다. 나 또한 가슴이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했지만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남극의 제왕, 황제펭귄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남극에 겨울이 오면 모든 생물들이 따뜻한 곳으로 떠나지만 황제펭귄은 오히려 남극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칼날 같은 매서운 추위에 맞서며 새끼를 낳고 키운다. 엄마 펭귄은 알을 낳고 나면 새끼를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먼 바다로 떠나고 아빠 펭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알을 품는다. 그들은 알을 품는 동안 서로의 몸을 밀착하여 '허들링'이란 독특한 방식으로 추위를 견딘다. 허들링은 안쪽과 바깥쪽 자리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면서 서로의 체온을 보존하는데 이것은 협동심과 배려심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참으로 훈훈한 모습이다.
이렇게 두 달이란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새끼들이 알에서 나온다. 아빠 펭귄은 이때부터는 새끼가 짓눌릴까 봐 허들링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혹독한 추위와 싸운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먹지도 못해 바짝 야윈 아빠 펭귄은 위벽에 모아두었던 음식을 토해서 새끼들을 먹인다. 펭귄밀크라고 하는 그것을 가끔씩 받아먹는 새끼는 여전히 아빠의 두 다리 사이에서 추위를 견디고 있다.
펭귄밀크가 떨어져 갈 때쯤 그동안 바다에서 열심히 사냥했던 엄마 펭귄이 돌아오는데 힘든 여정으로 상처를 입은 엄마 펭귄조차 오로지 자식에 대한 애착뿐이다. 이제 아빠 펭귄은 바다로 떠날 수 있지만 새끼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자신들이 겪어야 할 극도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혹독한 남극을 선택한 황제펭귄의 처절하고 숭고한 자식 사랑의 감동은 우리에게 참으로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또한 자식에게는 한없이 바보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 부모님들과 너무도 많이 닮은 것 같다.
하늘 아래 제일 크다는 부모님의 사랑, 우리는 그 큰 사랑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기다림에 젖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오고, 옷깃 여며주던 따뜻한 손길도 유난히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좋아하는 것은 귀로 듣지만, 사랑하는 것은 눈으로 본다고 한다. 전화선을 이용해 자주 귀로 들려주는 효도도 좋지만 자식바보인 부모님들의 두 눈에 자식의 모습이 온전하게 담길 수 있는, 몸으로 자주 보여주는 효도는 어떨까?
황 인 숙 시인'시낭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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