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선거는 멍석이 아니다

선거와 과거(科擧)는 닮았지만 다르다. '인재를 뽑는다'(選良)는 점에서는 같지만 누가 뽑느냐에 차이가 있다. 왕조 시대의 과거는 대개 학문을 익힌 인재들이 시험을 통과하면 관리로서 정책을 다루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별 탈이 없으면 기한 없이 자리를 지킨다. 반면 국민이 권력을 가진 이 시대에는 국민들 눈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정을 다루는 대표자로 행세할 수 있다. 물론 4년이나 5년 시한부다.

학문의 깊이와 사람 됨됨이를 보는 과거제도와 달리 선거판을 가르는 것은 민의를 새겨듣는 자세와 공약(정책)이다. 선거판의 변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인물에 대한 평판에다 열심히 일하겠다는 자세와 열정이 약하다면 낙점받기 어렵다. 결과도 중요하다. 잘해보겠다고 해서 뽑아놨더니 한 일 없이 못된 짓만 골라 했다는 불만이 유권자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 선거는 망친 선거다. 이럴 경우 선거는 그냥 허울 좋은 장치일 뿐이다.

'모수자천(毛遂自薦) 탈영이출(脫潁而出)'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마천의 사기 평원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모수라는 인물이 조나라와 초나라의 동맹이라는 담판을 짓기 위해 떠나는 사절단으로 스스로를 천거하면서 유래된 말이다. 모수는 조나라 평원군 조승(趙勝) 문하의 수많은 식객 중 한 명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평원군이 왕의 명을 받아 초나라에 갈 여러 문무지사를 찾는데 19명은 선발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이때 모수가 자기 자신을 추천했다. 평원군이 "선생은 내 집 밥 먹은 지도 3년밖에 안 되고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가 없어 보인다"며 의문을 표하자 "저를 자루에 넣어보십시오. 어찌 뾰족한 송곳만 드러나겠습니까. 몸통 전체가 밖으로 삐져나올 것입니다"고 대꾸하면서 이런 용어가 생겼다. 물론 결과도 좋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자신 있으니 한번 시켜보라는 기개가 대단하다.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 임하는 출마자들의 자세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기성 정치판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치러지는 선거라 유권자나 입후보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대를 저버리고 별 쓸모없는 사람을 뽑았다는 유권자들 불만의 목소리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이번 선거의 양상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현역 의원 70%는 물갈이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면서 금배지 색깔이 더욱 누렇게 뜬 마당이라 비웃음을 살지언정 모수자천도 대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여야 각 정당이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공약 다듬기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번 총선이 권력의 향배를 가름하고 정당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책을 꺼내 들고 감동을 외치며 쇄신과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서로 뭉치고 인재를 모으고 당명도 바꾸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 눈에는 여전히 마뜩잖아 보인다. 제도 개혁 없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만 봐도 그렇다.

이번 총선은 이전의 선거처럼 번지르르한 말로 눙치거나 값싼 표심에 호소하고 기댈 상황이 아니다. 대충 손 가는 대로 공천 주고 이 인물 저 인물 섞어 간판이나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유권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야 모두 선거에 대한 마음가짐부터 바꾸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좋은 인재를 가려내고 정책을 충실히 이행해 결과를 내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100% 물갈이하라는 소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여당도 그렇지만 야당도 그나마 처지가 낫다고 안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 당명 공모에서 보듯 '꼴보기싫당' '비서가했당'과 같은 조롱이 쏟아질 게 뻔하다.

정책이 씨앗이라면 인재는 농부다. 씨앗이 부실하면 농부가 아무리 땀을 흘려도 헛일인 것처럼 아무리 씨앗이 좋아도 농부가 게으르면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유권자에게 골고루 소출의 혜택이 돌아가는 좋은 씨앗과 농부의 땀이 온전히 결합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한 의회정치는 그들만의 잔치이자 깔아놓은 멍석에 불과하다. 이번 총선은 훈장이나 붙이는 과거(科擧) 같은 선거가 되지 않아야 한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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