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가 침탈로 제국 몰락 '동병상련'
양국 1970년대부터 군사적 협력까지
'호르무즈 해협 ' 국제 갈등에 관심 고조
무기 수출과 석유에 대한 진실 중국과 이란/존 W. 가버 지음/ 박민희 옮김/ 알마 펴냄
2012년 새해 벽두부터 세계의 이목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쏠리고 있다. 굳이 국제문제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서민들조차 리터당 2천원에 육박하는 휘발유 가격표와 머나먼 중동의 한 나라 이란이 벌이는 일거수일투족에 가슴을 졸인다. 페르시아어 '호르무즈'(hormuz)의 뜻은 생명의 나무 '대추야자'이다. 여기에서 유래된 호르무즈 해협은 20세기 이후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업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원유 5분의 1이 이곳을 거쳐 전 세계로 수송된다. 이곳이 막히면 세계경제가 순식간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들이 계속되는 핵 개발 의지를 막기 위해 경제 제재안을 결의하자, 이란은 자국의 앞바다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의 85%는 중국, 일본, 한국, 인도로 향한다. 서방국가들로서는 약간의 경제불안을 감수하고 이란을 제압할 경우 폐르시아만의 패권을 쥘 수 있기 때문에 해볼 만한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G2로 불리며 글로벌 정치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의 반응은 어떻까.
역사적으로 중국과 이란은 '신념'과 '이해관계' 두 가지 측면에서 강한 협력의 동기를 느꼈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 영광스러운 제국이었다. 이란은 페르시아제국, 중국은 중화제국으로서 각자의 세력권 안에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구 세력의 침탈로 제국은 몰락했고, 쓰디쓴 모욕의 '잃어버린 100년'을 통과해야 했다. 이런 신념이 현재 중국에서는 경제개발 의지로, 이란에서는 핵개발 의지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정치적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샤 왕조와 마오쩌둥 시기(1971~1978)에 두 나라는 소련이라는 헤게모니 국가를 견제해야 하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소련과 결별을 선언한 중국은 고립무원의 처지였고, 친미 정권인 샤 왕조는 친소 세력 국가(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둘러싸여 있었다. 위기를 느낀 두 나라는 군사적 협력을 강화했다.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정부와 중국의 덩샤오핑 시기(1979~1988)에는 잠시 서먹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중국과 이란은 다시 이어졌다. 당시 호메이니는 혁명을 수출하고자 했는데, 이로 인해 혼자서 미국과 기타 아랍왕조를 등에 업은 이라크를 상대해야 했다. 이때 중국은 페르시아만이 헤게모니 국가의 독차지가 되는 것을 우려해 은밀히 이란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무기 판매를 개시했다.
포스트 냉전시기(1989~2004)에도 중국과 이란은 군사적 지원 대신 경제적 지원으로 성격을 달리해 우호협력 관계를 지속했다. 이란은 걸프전 이후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고, 중국은 핵발전소 기술을 이전해 주는 방식으로 은밀히 핵개발을 도왔다. 미국의 반발로 1997년 중국은 이란에 대한 핵 협력을 전면 중단했다.
사실상 중국은 중동에서 미국에 맞서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을 달래기 위해 이란과의 협력을 완전히 포기한 적이 없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국제갈등이 폭풍전야로 느껴지는 이유다. 560쪽, 2만2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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