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빚 공화국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중에도 늘어난 가계 빚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995조원에 육박했고 지금은 1천조원을 넘어섰다. 2007년 말 가구당 4천400만원이었던 빚이 4년 만에 5천900만원으로 34% 늘어난 셈이다.
가계 부채가 급증한 것은 우리 사회가 빚 무서운 줄 모르는 '빚 불감증' 사회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다퉈 빚을 권한 금융회사는 그런 사회의 전도사였다.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3년 카드 사태 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해 가계 빚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2005~2006년 주택 시장 활황기에는 주택 담보대출을 통한 부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후 정부가 1금융권에 대한 대출 규제를 실시하자 제2금융권 대출과 저소득층의 생활 자금용 대출에 몰리는 계기가 마련됐다. 결국 가계 부채는 지난 15년 동안 금리가 높은 쪽으로 옮겨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진 셈이다.
빚은 결국 '거지'를 양산했다. 일생 동안 돈을 벌어도 중산층에서 하부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은행으로 들어가는 돈을 제외하면 수중에 남는 것은 없게 된다. 오히려 빚을 더 지면서 살아야 할 형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천70만 가구 중 108만 가구(10.1%)가 '하우스푸어'다. 빚을 내 집을 샀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10%를 넘는 경우를 '하우스푸어'로 부른다. 이들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원인데, 이 중 102만원을 매달 대출 원리금으로 내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율이 42%에 달한다.
집은 안 샀지만 결혼 비용과 전세금 때문에 빚을 지는 30대 '허니문푸어'도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4천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비용이 남자는 평균 8천만원, 여자는 약 3천만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30세 미만 가구 자산의 중간 값이 4천146만원(2011년)이기 때문에 자산의 2배가 훨씬 넘는 돈을 들여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부채 활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를 갖게 되면 더욱 본격화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자녀 1인당 평균 양육비는 총 2억6천204만원이다. 초등학생 자녀는 월 88만원, 중학생 98만원, 고등학생 115만원, 대학생 142만원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더 많이 들어간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노후 대비를 위한 월평균 저축액은 17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소비'저축 여력을 뺏긴 '에듀푸어'는 은퇴 후에도 빚 걱정을 해야 할 '실버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에 달해 OECD 평균치(13.3%)를 훨씬 웃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인 가구 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77%에 달했다.
결국 현대인들은 '허니문푸어→하우스푸어→에듀푸어→실버푸어'란 악순환의 길을 걸어가며 슬픈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빚내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 '고객님은 최우량 신용등급. 무(無)방문 당일 2천만원 대출 가능' 문자메시지부터 '전화 한 통이면 1천만원 입금'이라는 이메일 등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길거리엔 '연 4.3% 주택 담보 대출' 전단이 즐비하게 뿌려져 있고, TV를 켜면 '대출은 빨리 십분'이란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제도권'비제도권 금융사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빚을 지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또 보험 약관 대출은 설계사 도움 없이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주식 담보 대출은 클릭만 하면 입금된다. 예전엔 빚을 내기 위해 소득 증빙서류를 싸들고 은행 창구를 찾아야 했지만, 요즘은 전화 한 통에 돈이 통장으로 꽂힌다. 많이 빚지는 사람에게 경품을 주는 상품도 등장했다. 빚의 사슬로 끌어들이려는 광고와 경품 행사가 판을 치고 있지만 단서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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