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생들과 동고동락…情으로 뒷바라지합니다"

'하사모' 아줌마들의 수다

대구보건대 인근에서 10여 년간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아줌마들이 10일
대구보건대 인근에서 10여 년간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아줌마들이 10일 '하숙집을 사랑하는 모임'을 갖고, 신세대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아침과 저녁 밥상을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하숙집은 학창시절 온갖 추억거리를 안겨준 청춘들의 보금자리였다. 하숙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사귄 친구는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고 하숙집 아줌마들은 엄마처럼, 때로는 이모처럼 학숙생들에게 '정'을 듬뿍 쏟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가에 원룸과 기숙사가 늘어나면서 하숙집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숙집이 많이 줄긴 했지만 대구 북구 태전동 대구보건대 주변, 북구 산격동 경북대 부근엔 하숙집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하숙촌을 살짝 들여다봤다.

◆하숙집 아줌마들이 모였다

10일 오후 대구 북구 태전동 이레하숙 1층 주방에는 군침 도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같은 동네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아줌마 8명이 모여 저녁을 준비하는 자리다. 함께 특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먹일 생각에 아줌마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하숙을 사랑하는 모임 '하사모'회원들이다. 10여 년 전부터 대구보건대 인근에 하나 둘 하숙집이 생겨났고, 운영자들끼리 교류하며 자연스레 모임이 만들어졌다. 서로 오고 가며 이젠 오래된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최근 대학 인근 주택가가 원룸촌으로 변하면서 하숙집은 좀처럼 찾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대구보건대 주변은 사정이 다르다. 방사선, 간호, 임상병리, 물리치료, 치기공, 치위생 등의 학과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몰려들기 때문.

대구나 가까운 경북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많은 다른 대학에 비해 타향살이를 하는 학생의 비중이 높다. 하사모 회장 박영자(56'소정하숙) 씨는 "먼 지역에서 대구로 와 혼자 생활하기보다는 든든하게 챙김을 받을 수 있는 하숙집을 찾는 학생이 많다. 덕분에 인근 하숙집들도 10여 년 넘게 명맥을 잇고 있다"고 했다.

◆정이 오가는 하숙집의 하루

"하숙집 아줌마의 시계는 학생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숙집의 하루는 새벽녘 아줌마들의 식사 준비로 시작된다. 10여 명 학생들의 밥, 국, 반찬을 한꺼번에 준비하는 데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다. 하숙집 밥은 과거와 달리 뷔페식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취향에 따라 직접 덜어 먹는다. 요즘 하숙집 식당은 늘 만석이다.

김경숙 (52'현하숙) 씨는 "이전에는 귀찮다며 끼니를 거르거나 맛이 없다고 밖에 나가 사 먹는 학생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일반 식당의 밥값이 점점 오르면서 하숙집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시험 기간에는 하숙집 아줌마들도 학생과 함께 비상 체제에 돌입한다.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는 엄마로 잠시 변신하는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물론 학과에 따라 각종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숙집 아줌마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영양 공급에 신경을 많이 쓴다.

손귀옥(49'다사랑하숙) 씨는 "시험 기간이 되면 소화가 잘되는 요리로 식단을 전면 교체한다. 영양사 뺨칠 만큼 아줌마들도 이것저것 연구를 많이 한다"고 했다.

모닝콜도 하숙집 아줌마의 몫이다. 박현숙(50'우리하숙) 씨는 "자취생활을 하다 수업에 여러 번 지각해 학점을 낮게 받아 학사경고를 받았다며 어떤 학생이 하숙을 하러 온 적이 있다. 이후 아침마다 내가 책임지고 흔들어 깨워서 무사히 졸업시켰다"고 웃었다.

시험 기간이면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 새벽에 들어올 때가 많다. 하숙집 아줌마들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이 아픈 학생은 없는지, 약이나 간식 등 필요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챙긴다.

은종계(64'진하숙) 씨는 "시험기간이 되면 예민해지는 학생들이 적잖다. 시험공부를 하고 오더니 자다가 맹장이 터진 학생을 차로 응급실에 데려가 보호자 서명을 대신하고 부랴부랴 수술을 받게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숙집

대구보건대 주변 하숙촌에는 최근 두 곳이 문을 닫았다. 하숙집을 운영하는데 매년 식재료비, 공공요금 인상 등의 부담이 더해지는 탓이다. 원룸보다 하숙이 더 비싸다는 오해도 고민이다.

박영순(62'이레하숙) 씨는 "하숙비는 매월 식비 25만원에 방값 12만원을 합해 37만원가량이다. 요즘 원룸 방값은 매월 30만원 초반대에서 40만원 선. 식비를 더하면 하숙이 훨씬 싼 편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재료비나 각종 공공요금이 지난 5년 사이 50%나 뛰었다. 하지만 10년 전 매월 20만원이던 식비가 겨우 5만원 올랐다"고 했다.

그래도 하숙집, 학생, 학교 간의 끈끈한 유대와 정은 늘 힘이 된다. 2010년 12월 대구보건대는 하사모 회원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학교에 기숙사가 부족해 인근 하숙집 아줌마들이 학생들을 먹이고 돌보는 역할을 학교 대신 해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한 것.

이후 학교 측은 하숙집 연락처를 게시판에 올려 학생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부동산에서 하숙을 구할 경우 학생들이 소개비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도 해결됐다.

◆정으로 운영합니다

학생들과 1, 2년을 함께 지내며 쌓는 '정'이 하숙집 아줌마들에겐 가장 큰 보람이다. 김정숙(56'다정하숙) 씨는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머리핀이나 양말을 사오거나 학생들끼리 용돈을 모아 산 스카프를 선물받으니 왈칵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줌마들도 학생들 생일은 빼먹지 않는다. 오미옥(51'이모네하숙) 씨는 "쇠고기를 넣은 미역국은 기본이다. 학생들을 모두 모아 조촐한 파티도 연다. 가끔 학생 부모님이 자식 생일을 챙겨달라며 전화를 하는데 당연히 챙겨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20년간 하숙집을 운영해 온 학사모 최고참 은종계 씨는 하숙 생활을 했던 학생이 취직 후 결혼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에게 아빠가 대학 다닐 때 하숙하던 곳을 보여주고 싶다며 왔더라고요. 혹시나 하고 들렀는데 하숙집을 계속 운영하고 있어서 참 반갑다고 했어요. 손에 까만 봉지를 건네고 갔는데 쇠고기 3근이 들어 있었어요. 하숙하던 시절 끼니마다 잘 챙겨준 아줌마가 고마워 잊지 못한다고 했어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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