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패러디 전성시대… 비틀어보는 통쾌한 첫맛, 씁쓸한 뒷맛…

강용석 의원이 개그만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자 네티즌들은 그를 만화
강용석 의원이 개그만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자 네티즌들은 그를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의 명대사를 인용해 "그래,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고 패러디했다.
새누리당 로고 패러디 모음.
새누리당 로고 패러디 모음.
아이폰
아이폰 '밀어서 잠금해제'에서 착안한 '관등성명을 대서 잠금해제'.
정봉주 전 의원을 지칭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봉주 전 의원을 지칭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깔대기'를 획득하는 방식의 스마트폰 게임'달려라 봉도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세상을 비틀어보는 패러디 전성시대다. 풍자와 해학, 그리고 그 속에 숨은 뼈 있는 한마디가 대한민국을 웃기고 있다. 그래도 뒷맛은 영 씁쓸하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과 인터넷, SNS 등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사회 패러디물.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재치있는 비틀기 한판으로 한층 더 희화화되지만 그런 소재가 넘쳐나는 현실이 반길 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낄낄거리는 웃음 뒤에는 씁쓸한 뒷맛이 진하게 남는다.

◆정치인 패러디, 낄낄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고의 패러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연말 '119 전화사건' 이후로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 지난해 12월 김 도지사는 119에 전화를 걸어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며 소방관의 관등성명을 요구했고, 전화를 받은 남양주소방서 소속 소방관이 용건을 말하지 않은 김 도지사의 전화를 장난전화로 간주하고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았다. 그 후 해당 소방관은 전화 응대 관련 근무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전보 조치됐다가 논란이 커지자 다시 본래 근무지로 복귀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119 전화사건'은 인터넷과 SNS에서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회자됐다. '나는 도지사다'를 비롯해 아이폰 '밀어서 잠금해제'에서 착안한 '관등성명을 대서 잠금해제',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사극 '해를 품은 달'을 본뜬 '해를 품은 도지사' 등이 최고의 인기 패러디물로 떠올랐다.

시사풍자 개그 코너에서도 김 도지사를 향해 뼈 있는 한 방을 날렸다. 시사풍자 개그 코너인 KBS2 TV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개그맨 최효종은 용감한 소방관이 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119 전화사건을 비꼬았다. "용감하고 멋진 소방관이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남을 위한 희생정신, 봉사정신. 그리고 장난전화를 견뎌내는 인내심만 있으면 돼요. 아무리 불을 잘 꺼도 도지사의 목소리를 기억 못하면 좌천될 수 있답니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제명된 무소속 강용석 의원 역시 최다 악플과 패러디물을 양산해 내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특히 그가 사건 이후 국회의원을 풍자한 개그를 한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자 네티즌들은 그를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의 명대사를 인용해 "그래,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고 패러디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패러디물의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최근 가장 뜨겁게 회자된 패러디물은 '가카 헌정 라면 3종 세트'다. "가카가 쳐말아먹은 비릿한 바로 그맛, 꼼수면" "풍부한 꼼수와 비리로 우려낸 역겨운 매국의 맛, 가카새끼짬뽕" "도곡동 땅에서 키운 닭으로 만들어낸 정통 사기요리, 다스면" 등으로 임기 말년 터지고 있는 각종 비리를 비꼬았다.

최고의 인기 '나는 꼼수다'의 캐릭터를 따서 패러디한 개그 코너 '나는 하수다' 역시 현직 정치인들을 골고루 등장시키며 날카로운 풍자를 한다. "(나꼼수) 캐릭터만 따온 거야 정치적 식견, 그런 거 없어~"라고 외치는 '나하수'이지만 첫회부터 "문화방송 코미디언실 컴퓨터가 한꺼번에 다운된 사건이 박명수 매니저 단독범행으로 밝혀졌고, 박명수가 매니저에게 돈을 줬다"며 지난 10'26 선거 때 선관위 홈페이지 해킹 관련 의혹을 공격했다. 5회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빗댄 캐릭터인 박그네가 피디로 나와 "프로그램 시청률이 안 나와서 제목을 바꾸려고 한다"고 하자 나하수 4인방이 "제목만 바꾼다고 잘 나오나, 사람을 바꿔야지"라고 비꼰다.

◆패러디 게임 앱도 등장

최근에는 학교 폭력 사태를 빚은 주범으로 게임이 지목되면서 각종 게임 규제가 잇따르자 이를 꼬집는 패러디물도 양산되고 있다. 자정 이후 청소년의 게임을 막는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도'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새롭게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쿨타임 제도' 등이 규제책의 명분이 약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실효성조차 부족하다는 비판적 인식이다.

"패딩 관련 업체에게 수익금 1%를 걷어서 패딩 중독 치료 기금으로 쓰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정치인의 등장에 "이런 패딩족기 같은 경우가…"라며 씩씩거리다가, 3시간 지나면 패딩을 벗어야 하는 패딩 쿨타임 제도까지 도입시킨 후에야 정치인은 학교 폭력이 비로소 해결됐다며 웃는다. "여성부 너희들도 12시가 넘어가면 화장하지마. 화장 셧다운제 실시!" "부엌칼이 무고한 시민을 강도로 만들고 있으니, 부엌칼 업체들에게 세금을 걷어 범죄 예방 기금으로 쓰겠다"는 등의 패러디물도 인기다.

새누리당의 새로운 당 로고 역시 수많은 패러디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새 로고는 흰색 바탕에 '새누리당'이라는 짙은 회색 글씨, 그 위에 그릇 형태의 빨간색 문양으로 이뤄져 있는데 흰색은 백의민족을, 빨간색은 열정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밥그릇 같다" "치과 간판 같다" "빨간 목욕탕 의자가 생각나네요" "이빨 모양 아닌가?" "빨간색을 좋아하나?" 등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패러디물을 쏟아냈다. 새 캐릭터인 '앵그리버드'를 합성하는가 하면 그릇 모양의 빨간 형상 안에 새 문양을 그려넣기도 하고, 칫솔 그림을 위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패러디 애플리케이션 게임도 등장하고 있다. '달려라 봉도사'는 이용자가 '봉도사'가 돼 하늘에서 떨어지는 '깔대기'를 잡는 방식의 게임으로 '봉도사'를 조작해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 '깔대기'는 자화자찬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정봉주 전 의원을 지칭하는 수식어. '깔대기'의 종류로는 '꼬깔콘', '일반깔대기', '쌍깔대기', '왕깔대기'가 있으며, 각각의 아이템을 획득하면 점수가 추가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 논란을 풍자한 게임도 화제다. 이 게임은 구글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사용자가 가상의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말을 거는 내용이다. 사용자는 계속 말을 걸 수 있지만, 김문수 도지사는 "이름을 말해달라"라는 말만 반복한다. 몇 번을 반복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독일 메르켈 총리 등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는 '정치인 때려' 앱,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계산해주는 앱 등도 등장했다.

◆비틀어 보는 재미,

패러디(parody)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을 말한다. 악의성이 지나친 것은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어느 정도의 희화는 허용되는 편이다. 게다가 패러디에 발끈했다가는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속 좁은 인사로 낙인찍히면서 한층 더 강력한 패러디에 시달리게 되는 상황이다.

그중 정치는 패러디의 단골 소재가 된다. 딱딱하고 무겁기만 한 정치적 이슈에 유머가 감겨들면서 '권력'의 높은 성역을 허물고,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층들이 쉽고 가볍고 유쾌하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제5공화국 시절에도 개그맨 김형곤, 최양락, 임하룡 등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꼬집으며 패러디한 바 있다. 특히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 최양락의 '네로 24시' 등은 당시 시대를 날카롭게 풍자해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한동안 단절되다시피했던 해학과 풍자 문화는 2000년 들어 인터넷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패러디'라는 형태로 새롭게 정착했다. 시사 풍자 사이트 딴지일보와 디지털 카메라 정보교환 커뮤니티였던 디시인사이드가 주축으로 사진 합성, 음원 믹싱 등을 통한 다양한 패러디물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가 됐다.

윤규홍 문화평론가는 "패러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것이 인터넷이나 SNS 등 좀 더 빠르게 전파되는 매체를 만나면서 한층 파급력이 강력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최근 정치 관련 풍자가 많아진 것은 규제에 대한 반작용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패러디가 생겨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1980년대도 '보통고릴라'라는 기념비적인 만화에서부터 각종 코디미 프로그램, 신문의 만평이나 4컷 만화 등을 통해 계속돼 왔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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