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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대, 등대는 더 빛난다

한국 유인 등대 38개, 무인 등대는 1천64개…LED 조명으로 교체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등대와 흰 등대는 좌측, 우측통행을 지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미곶항 방파제에서 볼 수 있는 빨간, 흰 등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등대와 흰 등대는 좌측, 우측통행을 지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미곶항 방파제에서 볼 수 있는 빨간, 흰 등대.

매일신문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고요한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항해 중 선박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안전하고 경제적인 항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항로표지인 등대의 역할이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등대는 망망대해,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 빛을 보내 뱃길을 인도한다. 그래서인지 등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으로 곧잘 인식되기도 한다. 낭만적인 고독의 이미지와 함께 그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어둠을 밝혀주는 따뜻함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최첨단 IT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각종 첨단 항법장치도 많을 텐데 이런 불빛 하나가 뭐 그리 도움이 될까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치든다. 과연 등대는 21세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38개 유인 등대, 1천64개 무인 등대

사람들이 등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 하나가 '등대지기'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불러온 곡으로 서정적인 노랫말과 아름다운 가락이 머릿속 깊숙이 박혀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정작 등대를 지키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등대지기'라고 한다. 이들의 정확한 명칭은 '항로표지원' 혹은 '등대관리원'이다. '~지기'라는 단어가 그 직업을 가진 이들을 폄훼하는 의미가 있다 보니, 육지 사람들에게 동심과 평화로움의 상징인 등대지기라는 단어가 정작 본인들에게는 '차별'과 '소외'의 의미로 와 닿았던 것이리라.

국립등대박물관 진한숙 관장은 "1980년대 등대원의 아들이 정부에 편지를 써 친구들이 아버지를 자꾸 놀리니 명칭을 바꿔달라고 건의한 것이 계기가 돼 항로표지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8개의 유인 등대와 1천64개(국가 908개, 개인 156개)의 무인 등대가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항로표지원이 상주하면서 불을 밝혀야 했지만, 요즘은 오지나 무인도 등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상당수 등대들은 원격제어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등대와 곧잘 헷갈리곤 하는 것으로는 등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47개(국가 330개, 개인 17개) 등표가 있다. 등대는 선박이 육지나 주요 변침점(항로를 바꿀 때의 기준점), 또는 현재 배의 위치를 확인할 때 목표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연안이나 섬, 곶, 방파제 등에 설치한 탑 모양의 구조물을 일컫는다. 하지만 등표는 선박에 장애물이나 항로의 소재 등을 알리기 위해 암초나 여울 위에 떠 있는 등대다. 바닷가 물속에 설치돼 있다는 것이 등대와의 차이점이다.

여전히 등대원이 상주하고 있는 38곳의 유인등대는 주로 해양교통 요충지 내지는 관광적 가치가 높은 곳이 많다. 진 관장은 "각 특수 상황에 대한 사람의 판단력을 따라오긴 힘들기 때문이 중요 요충지에는 상주 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에는 등대가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를 개방해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일부 등대를 유인으로 운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한 등대

첨단 항법장치가 발달하면서 고작 불빛을 보낼 뿐인 등대가 무슨 큰 역할을 할까 생각하는 이들도 적잖겠지만, 여전히 등대의 역할은 건재하다. 등대의 역할이 불빛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그 색깔로 정보를 알려주며, 소리와 전파를 통해서도 육지에 근접하는 배들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 관장은 "아무리 첨단장비가 발달한다 하더라도 육지에 가까이 올수록 위험물이 많아지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게 마련이며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등대"라고 밝혔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등대와 흰 등대의 차이는 뭘까. 보기 좋으라고 멋대로 칠한 것이 아니다. 도시의 교통신호등처럼 낮에는 그 색깔로 배들이 항로를 따라갈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붉은색 등대는 우측에 장애물이 있으니 좌측으로 통행하라는 의미고, 반대로 흰색 등대는 좌측에 장애물이 있으니 우측으로 통행하라는 신호다. 밤이 되면 이 등대들은 불빛으로 그 의미를 전달한다. 붉은 등대는 붉은색 불빛으로 좌측통행을 유도하고, 흰 등대는 초록색 불빛을 내 우측통행을 지시한다. 가끔 노란색 불을 내뿜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위험 경고' 표시다. 인근에 공사현장이 있거나 위험 지역이 있으니 근접하지 말라는 표시다. 또 사람들이 흔히 등대라고 부르는 것은 등탑(등주)을 의미한다. 그 내부는 사실상 단순하기 그지없다. 불을 밝히는 등명기가 가장 상단부에 설치돼 있고, 그 아래는 등명기 수리나 교체를 위해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있으며, 내부에 축전지가 설치돼 있다. 진 관장은 "보통은 등탑과 별도로 직원 근무'주거시설 공간이 같이 지어져 있다"고 했다.

◆등대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는 1903년 6월에 완공된 인천 팔미도 등대다. 1901년 일본과 맺은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일명 강화도조약)에 의해서다. 당시 일본은 인천항에 배를 대 조선에서 수탈한 물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등대 설치를 강요했다.

일제 침탈의 방편으로 건설된 이 등대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50년 9월 14일 함대를 이끌고 인천 앞바다에 도착한 맥아더 장군은 고민에 빠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수심이 낮은 바다를 성공적으로 건너 상륙하기란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명령이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였다. 이때 북파 공작 첩보부대, 일명 켈로부대원이 중심이 된 특수부대가 침투해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팔미도 등대는 군사작전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2009년 '인천방문의 해'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되어 현재까지 매년 수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호미곶 등대 역시 아픈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이다. 1908년 만들어진 호미곶 등대는 일본이 자국의 수산실업학교 실습선이 침몰한 것을 계기로 대한제국에 설치를 강요한 것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피워 뱃길을 인도했다. 나무로 된 표지를 세워두는 경우도 있었다.

불을 밝히는 등명기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진화를 계속해 왔다. 등대가 만들어진 초기부터 1950년대까지는 석유등이나 아세틸렌가스등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후에는 전기등으로 대부분 교체됐다. 지금은 상당수 등명기가 LED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 관장은 "LED 조명의 경우 시인성이 뛰어나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어 대부분 소형 등대의 경우 LED 등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광원별 특성이 있다 보니 홍색, 녹색, 황색 LED 조명은 식별력이 탁월하지만 백색 조명의 경우에는 아직 전기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해양문화공간 등대

과거 선박안전의 항행보조시설이었던 등대가 요즘은 시민들의 휴식, 관광 등 새로운 해양문화공간으로서 큰몫을 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7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을 선정하기도 했다. 30여 년을 등대와 함께해 온 진 관장은 "등대는 주로 가장 돌출되면서 높고, 사방이 트인 곳에 자리 잡기 때문에 풍광이 뛰어난 곳이 많다"며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백미라고 생각되는 등대는 소매물도 등대"라고 밝혔다.

한때는 통제지역이었던 등대가 개방되면서 최근에는 등대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울산 간절곶'울기 등대를 비롯해 부산 가덕도, 여수 거문도 등의 일부 유인 등대에서 진행되는 1박 2일 '등대 체험 프로그램'은 자녀를 둔 가족단위 체험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색 등대도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대게의 고장 영덕의 창포말 등대(대게 등대)를 비롯해 젖병 등대, 연필 등대 등이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로 조명받고 있는 것. 하지만 많은 지자체들이 '볼거리' 만들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조심스럽게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진 관장은 "개인적으로 등대는 너무 멋을 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요즘 각 지자체들이 나서 이색 등대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대해 조금은 경계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등대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것. 진 관장은 "너무 외양에만 치중하다 보니 등대가 가진 고유의 기능이 침해받는 사례도 종종 보게 되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견디며 묵묵히 그 역할을 해야 하는 등대인 만큼 본래 기능을 100% 지키는 선에서 조형적 미가 가미되는 형태였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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