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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달의 문화 톺아보기]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의 행방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가의 문화재나 미술품을 온전하게 지켜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은 모양이다. 1990년 3월 18일 가드너미술관에 경관으로 위장한 도둑이 침입해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검은 옷의 부인과 신사' 등 13점의 명화를 훔쳐 달아나 버렸다. 뭉크의 작품인 '절규'는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 개막식 날에, 그리고 또 다른 작품인'절규'와 '마돈나'는 2004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날에 도난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74년 러스보로 하우스에서 도난당한 베르메르의 '편지 쓰는 여인과 하녀''기타 치는 여인'은 돌아올 때 "동티모르를 도와달라"는 범인의 요구가 너무나 낭만적이었기 때문에 뒷말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한 목수가 다빈치의 조국인 이탈리아로 돌려주기 위해 훔쳐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국심보다는 국제법이 문제가 되어 루브르미술관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이렇게 돌아오는 작품도 있으나 대다수는 회수되지 못하는 데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당시 치안 공백을 틈타 바그다드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가 막무가내로 강탈당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TV로 보았는데 그때 1만여 점이 사라져버렸다. 그 '1만점'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와 실패', 카라바조의 '아기 예수의 탄생' 등은 세계 10대 도난 미술품이지만 아직도 주인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몇 해 전 그리스 아테네 국립미술관 경비원들의 파업 때는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가 도난당하기도 했다. 피카소는 이것 말고도 1천147점을 도난당해 이 분야 최고다.

희한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지난 1978년 국전에 입상된 작품 58점이 한꺼번에 도둑맞았으며, 1967년에는 덕수궁미술관에 전시된 국보 제119호인 '금동여래입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이보다 더 오래전인 1927년에는 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금관총'이 분실됐다가 5개월 만에 경찰서장 관사 앞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 기막힌 사건은 최근에 발생했다. 엄청난 학술적 가치 때문에 1조원을 호가한다는 광흥사(경북 안동시) 불복장 유물인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의 행방이다. 행방을 찾고자 문화재청의 끈질긴 설득에도 절도범 배모(49) 씨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내놓나 안 내놓나 옥살이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10년 징역형을 받아들였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행여, 옥살이하고 이걸 팔아먹겠다는 계산을 했다면 누가 이 양반에게 문화재법에 소멸시효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는 걸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겠다.

안동시 역사 기록관'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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