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 정재복 소릿재 봉사회장의 대금 '재능기부'

시각장애 딛고 '희망의 가락' 연주…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불편한 몸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시각 장애 5급인 정재복(동구 신천동) 씨는 누군가 즐거움이 필요한 곳이면 본업도 뿌리치고 달려간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 모 이발관에서 23년째 이발사로 근무하고 있는 정 씨가 재능 나눔 인연을 맺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정 씨의 뒤바뀐 운명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9년 육군상사로 정년퇴직한 정 씨는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종업원 15명을 거느린 화물운송회사 대표였다.

육군상사 재직시절 하급병사가 불어주던 청아한 대금소리에 빠져 운송일을 하면서 틈틈이 대금을 배웠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정씨에게 87년 어느 날 불운이 닥쳤다. 대형유리가 깨지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게 된 것. 사업장도 문을 닫고 부푼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술과 담배로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89년 국비지원 기술학원에 등록해 3개월 만에 이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취직 후에도 평형감각을 잃어 단골손님의 귀를 자르고 머리 한쪽을 비틀게 잘라 쫓겨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순간순간 포기와 좌절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것이 대금이었다. "손끝을 스칠 때마다 쌓인 한을 대변하듯 튕겨 나오는 청음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대금을 불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정 씨는 회상했다.

정 씨는 키보다 훨씬 큰 악기가방을 항상 메고 출퇴근을 한다. 악기 가방에는 대금 9자루와 단소 12자루가 들어있다.

90년 인터넷 세이클럽 국악과 민요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림속의 사랑노래'란 동호회 에 가입하면서 국악봉사를 시작했다. 봉사 초창기에는 열애원, 가톨릭병원, 가르뱅이 양로원 등 대구경북 요양시설과 중증장애인시설을 찾아 공연을 했다. 점차 전국모임으로 확대, 울산'부산 등 20여 년 동안 방문한 시설만도 70여 곳이 넘는다.

독학으로 소리를 깨친 정 씨의 대금실력은 전국시조경창대회 반주를 맡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유명세를 탄 정 씨는 전국행사에 요청이 쇄도한다.

대금연주 외에도 단소, 장구 등을 잘 다루는 정 씨는 98년 맹인복지동구지회(시각장애인동구지회)에 가입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또 정 씨는 소릿재 봉사단을 만들어 4년째 매월 1회 중구 대봉동에 있는 어르신입소마을을 찾아 재능나눔을 펼치고 있다.

글'사진 오금희 시민기자 ohkh7510@naver.com

멘토:배성훈기자 bae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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