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공을 맞혀서 밖으로 내보내. 조금 오른쪽으로, 아니 좀 더 오른쪽으로."
"아이코, 살짝 빗나갔네. 이 일을 어쩌지."
6일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실내게이트볼장. 게이트볼 동호회 '이곡성실회'의 자체 청백전 열기가 경기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공을 칠 때마다 코트에서 탄성과 환호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백팀(2'4'6'8'10번 공)의 실책은 홍팀(1'3'5'7'9번 공)의 기회로 이어져 연이은 '터치'와 '스파크 타격'으로 백팀의 공이 아웃, 승부가 급격하게 기울어 갔다.
강해숙(54'여) 씨는 "게이트볼은 팀워크가 중요해 작전을 잘 짜야 하고, 각자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야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며 "욕심을 내거나, 실수를 하면 순식간에 흐름을 넘겨줄 수 있어 신중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칠 차례가 되면 선수들은 프로 골퍼가 홀컵에 공을 넣기 위해 그린을 읽듯 거리와 각도 등을 면밀하게 잰 뒤 비로소 타격에 나섰다. 그래도 실수는 있는 법, 그때마다 코트에 선 10명의 얼굴엔 기쁨과 실망이 교차했다.
이곡성실회는 성서실내게이트볼장이 생긴 뒤 이곳에서 모여 활동하는 게이트볼 동호회다. 50대에서 70대까지가 주 연령층이고 현재 120여 명이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50대 회원이 늘어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용덕(73) 회장은 "게이트볼이 노인 운동으로만 알려졌는데, 사실 이 운동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며 게이트볼의 재미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경기방식은 간단하다. 커다란 망치처럼 생긴 스틱으로 각자의 볼을 쳐서 코트 바닥에 꽂혀 있는 3개의 작은 게이트(골문)를 통과시키면 된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1점씩 주어지고 마지막에 중앙에 있는 골폴을 맞히면 2점을 얻어 한 사람이 획득할 수 있는 최대 점수는 5점이 된다. 한 팀이 5명으로 구성돼 25점을 먼저 얻으면 승리한다. 하지만 양 팀의 견제가 심해 25점을 내기는 어렵고 30분 경기시간 동안 많은 점수를 낸 팀이 보통 승리하게 된다.
5명씩 두 팀으로 나누고,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가 새겨진 10개의 공을 한 사람이 한 개씩 치게 된다. 홀수 번호와 짝수 번호가 한 팀이 돼 가로 17m, 세로 22m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친다.
경기가 시작되면 심판의 호령에 맞춰 순서대로 공을 치는데 반드시 1번 게이트를 통과해야 다음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 코트에선 상대편 공이든 같은 팀 공이든 자기 공으로 튕겨내는 터치를 하면 한 타를 더 칠 기회가 제공된다. 여기까지가 게이트볼의 경기 방식이며 규칙이다.
시시할 것 같지만 게이트볼의 매력은 5명을 한 팀으로 가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좌길(73) 할아버지는 "5명이 칠 순서를 짜는 것부터 머리를 써야 한다"며 "상대를 견제하면서 많은 득점을 올리려면 치밀한 작전과 팀원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잘 치면 여러 차례 공격이 가능해 상대팀의 공을 밀어내며 코트를 휩쓸 수 있지만 실수를 하게 되면 반대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을 치는 건 골프와 같고, 공을 맞히는 건 당구와 흡사하다. 그리고 경기방식은 윷놀이를 닮았기에 게이트볼은 노인들의 시간 보내기 운동으로만 볼 수 없다. 30분간 코트를 여기저기 걸어다녀야 해 걷기운동이 되고, 먼 곳에 있는 공을 치고 게이트를 통과하려면 정교한 스윙 감각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다 포지션 플레이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윤희(60) 씨는 "코트에 들어서면 모든 시름을 잊고, 오직 경기에만 몰입하게 돼 집중력을 높이는 데 최고의 운동이다"며 "쉽게 배울 수 있지만 하면 할수록 좀 더 정교한 거리측정, 판단력 등이 요구돼 쉽게 그만둘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실력 향상을 위해선 연습은 필수다. 김애숙(53) 씨는 "처음엔 지름 7.5㎝의 공을 때려 4, 5m 전방에 있는 폭 22㎝의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원하는 위치에 공을 보내려면 힘 조절과 공을 때려내는 기술이 필요해 매일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인들에게 국한됐던 게이트볼 동호인들의 연령이 조금씩 중년층으로 확산되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인생이야기도 게이트볼의 매력에 덧붙여진다. 강해숙 씨는 "경기 내내 나이 많은 어른으로부터 삶을 사는 지혜로운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고,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운동이다 보니 옷매무새부터 화장까지 신경 쓰게 돼 나이보다 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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