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증세 없는 복지공약은 거짓이다

선거철이다. 여야가 공천을 둘러싸고 시끌시끌한 가운데 서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총선공약이지만 내실은 연말 대선까지 연결된 각 정당의 집권 프로그램이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공약은 앞으로 4, 5년 동안 국민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함축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즉 복지와 관련한 공약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제법 그럴듯하다. 주목받는 것은 여당의 비대위 대표이자 차기 주자인 '박근혜표 복지'와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3+1 보편적 복지'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공약도 관심거리다. 그런데 이러한 공약을 점검하는 언론매체들의 논조는 대립적이라 국민들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논란의 핵심은 대체로 그 사업의 타당성과 재원 조달 방안의 실현 가능성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중립적이어야 할 정부가 간섭하고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복지 공약을 검증한다고 무슨 TF를 구성했다고 하고, 국무총리는 무리한 복지 공약에는 원칙을 세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고 하니 아마도 현 정부는 복지정책의 확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선거의 공정성 시비를 넘어 과연 복지정책이 그렇게 걱정거리의 대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복지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정책 논쟁보다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치우쳐왔다. 복지를 외치면 좌파라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고도성장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복지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였으며 그때그때 정치적 맥락 속에서 확대되어 왔다. 그런데 복지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복지를 확대하면 재정건전성을 해칠 것이고 결국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매우 경직적인 전제조건을 깔고 제기된 주장으로 편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복지 지출을 확대하면 정말 재정건전성이 위협받는가? 그럴 수도 있다. 조세부담률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유럽 선진국들에선 세입 확대가 어려워져 재정의 경직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보다 6%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그러니 재정건전성을 염려하는 견해는 아마도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2008년 20.7%에서 2010년 19.3%로 낮아진 조세부담률이 올라갈 것을 염려한 견해일 듯하다. 만약 복지정책의 내용 자체를 지지한다면 완만한 조세부담률의 상승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복지 지출을 확대하면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인가? 역시 과도한 복지정책이 저축이나 근로의욕을 크게 감퇴시키는 상황이 나타나면 그럴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이 복지안전망이 잘 되어 있어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는가? 일 안 해도 복지급여로 먹고살 만해서 한국의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이 높은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답은 자명하다.

복지정책은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헌법적 합의의 실천과정이다. 물론 모든 것을 국가가 보장하고 실천할 수 없음도 자명하다. 그러나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빈부격차는 확대된다. 이를 방치하면 한편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불균형을 이루는 불황 내지 공황이 빈발하여 자본주의경제 자체를 위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갈등이 격화되어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그래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복지국가가 발전해온 것이다.

20세기형 복지국가의 폐해로 등장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 열풍이 복지지출의 삭감과 감세를 조합으로 하는 개혁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1대 99의 양극화 현상일 뿐 자본주의를 구제하지 못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탐욕적인 금융자본주의의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고 각국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각설하고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복지정책의 보따리를 부풀리고 있는데 과연 재원대책을 제대로 포함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복지지출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공약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복지로 표를 얻으려면 증세에 대한 동의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미래세대에게 부채를 남기지 않는 현 세대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이재은/경기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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