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채소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한 적이 있다. 가게 주인 할머니는 배추, 시금치, 상추 등의 발음은 분명했지만, 식당이나 가게의 상호를 말할 때는 애매하게 발음하기 일쑤였다. 우리말에 없거나 분명하지 않은 단어였고, 배달을 나갔다가 그런 상호를 찾지 못해 헤매곤 했다. 그래서 "할머니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그런 가게는 없었어요. 상재식당이 아니라 상주식당이더군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할머니의 발음은 여전히 애매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쓰는, 그래서 자주 듣는 단어는 분명하게 발음했지만 식당 이름이나 약국 이름 같은 읽어서 스스로 알아야 하는 단어는 애매하게 발음했다. 만약 할머니가 내게 "사실은 내가 한글을 못 배웠다. 읽을 줄 모르니까, 비슷한 곳을 네가 잘 찾아봐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70, 80대 노인들, 특히 여성들 중에는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많다. 그것은 '시대의 탓'이 컸지만, 채소 가게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여겼고 부끄러워했다. 그 부끄러움이 악착같은 교육열로 나타났을 것이고, 자식들은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은 세대가 됐다. 그 교육의 힘이 오늘 대한민국을 역사 이래 최대 강국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근래에 유난히 시대와 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반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88만 원 세대', 노후 대책이 막막한 '베이비 부머 세대', '공부에 시달리느라 아이다운 매력을 잃어버린 세대'…. 현재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우리는 흔히 '시대와 환경'을 탓한다. 나를 발전시키는 데는 힘든 고통이 따르고, 시대와 환경을 탓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을 탓한다고 내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자기 삶을 따뜻하게 살피는 가장 분명한 길은 자신의 인생에 애정을 갖고, 인내하며 노력하는 길뿐이다. 세월(시대와 환경)과 개인은 상호작용한다. 채소 가게 할머니처럼 모든 단점을 자기 탓으로 생각해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지만, 자신의 불우함을 모두 환경 탓으로 돌리며 뻔뻔해져서도 안 된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할머니처럼 자신을 탓하는 쪽이 더 발전적이다.
조두진 문화부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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