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논술교육의 방향이 문제였다

보통 학원에서 8주간 이어지는 논술 수업에서는 매주 논술문을 내고, 강사로부터 첨삭을 받는다. 이와 관련, 학원가에서 통용되는 논술 첨삭의 불문율이 있다. 무조건 첫 주에 점수를 박하게 준다는 것. 1주차 첨삭에서 50점을 받으면 학생들은 '그래, 내가 원래 논술 못하잖아'라고 스스로 자신의 점수를 인정한다. 2주차에서 강사는 살짝 점수를 올린다. 55점. '어? 내가 일주일 만에 실력이 늘었네?'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수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3주차에 60점, 4주차에 70점을 받으면 학생들은 진짜 자신의 논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자신감을 갖는다. 이때 5주차에서 선생은 슬쩍 점수를 내린다. 다시 60점. 학생들은 수업 중반에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긴장감을 갖는다. 6주차에 70점으로 올리고, 7주차에 80점, 마지막 주에 90점으로 마무리하면 학생들은 8주간 논술 수업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고 강사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내린다.(이상수의 '논술공부 99%는 잘못됐다' 중에서)

논술 사교육을 담당했던 사람의 자기반성이니까 이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이러한 진실을 멀리했다. 자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무조건적 이기심이 추가되면서 논술교육은 결국 막다른 골목에까지 다다른다. 그래서 결국 정책 당국은 대학별 논술고사의 축소 내지 폐지를 요구했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의 논술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결과적으로 정책의 실패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실패는 정책이 지닌 본질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단지 대학입학을 위한 전형방식 측면으로 접근한 정책 수행 방식의 잘못이다. 대학도, 사교육도, 심지어 학교교육조차도 '논술'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학별 논술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논술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한 교육으로 접근했다. 논술은 단지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엄청난 예산을 학교논술교육동아리 지원과 논술 관련 연수에 쏟아부었다. 특히 대구시교육청은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을 중심으로 학교논술교육동아리 컨설팅을 비롯해서 실습 중심의 교사연수를 진행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규수업뿐만 아니라 보충수업, 자율학습, 각종 잡무에 시달리는 고교 교사들은 마침내 지치기 시작했다. 급한 나머지 특정 학교에서는 논술을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논술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면서 논술교육의 문제점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정규 교육과정의 교과목이 되면 논술 교과목을 담당할 특정 논술교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논술을 특정 논술교사가 전담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아무래도 국어교사나 철학교사, 또는 사회교사가 맡아야 할 것인데, 다른 교과목의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양한 교과목을 통합한 수업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수업은 일반적인 논술 이론 수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교과목의 교사가 함께 수업을 한다 해도 시수 배정이 쉽지 않다. 나아가 교과서 차례를 그대로 활용한다면 통합적 수업 자체가 어렵다. 결국 대부분 사교육 기관의 논술수업과 다르지 않는 상황이 된다. 논술교육을 버림으로써 학교교육은 교과목의 통합이라는 미래지향적 학문의 방향도 길을 잃었고, 사교육이 따라올 수 없는 하나의 교육방법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논술은 국어나 수학, 과학과 같은 일정한 형식(커리큘럼)을 갖춘 교과목이 아니다. 그런 교과목을 학습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80년대이든, 9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contents)이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피동적 지식 습득보다는 능동적 학습과, 학습한 내용의 창의적인 활용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와 요청이 논술이라는 방법론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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