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반복 공연의 창조성

아동 문학가 서정오 선생님은 창작보다는 '옛이야기 채집'에 더 몰두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기왕이면 창작에 시간과 재능을 더 투자하시지, 채집에 그토록 몰두하는 까닭이 뭡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내가 쓰는 새로운 작품은 내 인생관, 내 체험, 내 재능의 총체에 불과해요. 이에 반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전승되어온 옛이야기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염원이 담겨 있지요'라고 답했다. 덧붙이기를 '오랜 세월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손자와 손녀에게로 전승되는 동안 이야기는 살이 붙고, 또 떨어져 나가기를 거듭했겠지요. 완성도 측면에서 볼 때 한 개인이 새로 써내는 작품과 섣불리 비교할 수는 없어요'라고 했다.

대구에는 6개 시립 예술단과 각 분야 수십 개의 민간 예술단이 있다. 이들 중 부지런한 예술단은 거의 매년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창작품을 진득하게 수정 보완하고,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 했던 공연을 또 하느냐?'는 싸늘한 시선과 '재탕한다고 욕먹을 바에야 새로 만드는 게 편하다'는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연 예술 분야에서 새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무척 가치 있다. 그러나 기존 창작품을 새로 해석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매년 새롭지만 어설픈 작품을 내놓을 뿐 완성도 높은 작품,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내놓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 예술적 완성도 높은 작품치고 수십 년 혹은 100년, 200년 넘게 반복 공연되면서 수정, 보완되지 않은 작품은 없다. 단언컨대 모든 재공연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창작이다.

세월의 파괴력은 강철도 녹이는 법이다. '안 될 작품'은 세월의 힘에 밀려 스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번 했던 작품을 또 하느냐?'며, 사람이 성미 급하게 나설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예술 작품에는 정답이 없고, 같은 작품이라도 연출자에 따라, 출연 배우에 따라, 무대에 따라, 관객의 나이나 처한 상황 등에 따라 감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번 공연했던 작품을 또 하느냐' 식의 말은 공연한 트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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