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연 리뷰] 대구시향 6월 첫날 정기연주회

감동 더한 1세대 피아니스트…'레퀴엠' 절반 연주 아쉬움 남겨

호국의 달 6월 첫날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회는 6'25세대들에겐 남다른 감동이 있었을 것 같다.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협연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1954년 6월, 13세의 소년으로 미 군용기를 타고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전쟁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한국에서 음악 신동이 왔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는 50년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고 17년 이상 보스턴음대에 재직하다 영구 귀국해 현재 순천대학교에서 후진 양성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1세대 피아니스트들이 있었기에 이경숙, 김영호, 김대진, 백혜선, 박종호, 조재혁, 임동민'동혁 형제, 손열음, 조성진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대구시향의 연주는 현의 물결이 좋았다. 70대의 노 피아니스트는 아직도 힘있게 건반을 휘저으며 때론 생기있게, 때로는 거칠게 다루어 마치 러시아 겨울 들판을 휩쓰는 눈보라 같았고, 요원을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여류 '아르헤리치'의 실황 녹음 속에서도 사소한 실수가 발견되듯 노 대가의 연주에서 보인 약간의 오류는 논의대상이 되지 못할 것 같다.

한편 애호가들 모두 잔뜩 기대했던 베르디의 '레퀴엠'은 연주시간 안배상 절반만 연주돼 아쉬움을 남겼다.

연주 당일 오후 도착한 부산시립합창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은 서로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지만, 절제된 화음과 풍성한 음향으로 진지하게 일사불란한 곡해석을 해줬다.

이 곡은 베르디가 작곡한 26개의 걸작 오페라보다 더 극적인 오페라적 요소를 갖고 있다. 진혼곡이라 하지만 죽은 자보다 오히려 산 자를 더 위로해주고 있다.

2부 '진노의 날' 감상 포인트는 합창과 금관, 목관, 타악기 등이 빚어내는 인류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어떠한 템포와 표정을 가지고 청중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는가에 있다. 또한 숨겨진 4대의 트럼펫의 허무한 절규와 탄식을 듣는 일이다.

청중들은 소프라노가 높은 E음을 잘 내는가, 테너가 B음을 자신 있게 내는가 듣고 싶어한다. 독창자들이 언제나 암보하기를 원한다.

악보를 양손에 들고 책 읽듯이 악보를 보면서 노래하면 발성에 문제가 생기고 악보에 가려 음성 전달이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이만한 베르디의 '레퀴엠'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애호가들에겐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레퀴엠 전곡을 더 큰 무대에 올려 줄 것을 기대한다.

윤성도<계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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