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어처구니없는 부모들

몇 해 전 일본 오사카에서였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인도를 걷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맴돌며 깡충깡충 뛰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다가 10m쯤 앞에 횡단보도가 보이자 달려가서 건너려 했다. 놀란 엄마는 득달같이 달려가 아이의 손목을 낚아채고 뭐라고 마구 꾸짖으며 뺨을 후려쳤다. 그 광경을 보며 '뺨을 맞아야 할 사람은 엄마인데…'라고 생각했다. 애당초 위험한 길가에서 아이의 손도 잡지 않고 장난을 치도록 내버려둔 잘못은 엄마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 대구의 한 전시장 앞 광장에서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 울었다. 2분 가까이 울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측은해 기자가 달래려고 아이 곁으로 다가서자 저쪽에서 엄마가 아이를 불렀다. 우는 자식을 진즉부터 보고 있었지만 내버려두다가 낯선 남자가 다가가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엄마를 때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아이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엄마는 또 자신이 아이를 버리고 홀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절망적으로 울고 있지만 달려가서 안아주면 금세 까르르 웃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앞뒤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에 엄마는 느긋하다. 그래서 아이가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여 처절하게 울어도 엄마는 제 할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아이, 어쩌면 자신이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목이 터져라 울며 1, 2분을 견뎌야 하는 아이의 기막힌 심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처구니없는 부모는 또 있다. 대학생이 된 자식의 수강 신청은 물론이고 기차표까지 일일이 끊어준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챙기는 게 부모 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어린 자식의 몸과 마음에 생기는 흉터는 부모의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다 큰 자식이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에게 묻는 것 역시 부모의 잘못이다. 자식의 '몸집'이 엄마의 치마폭 안에 들어가는 동안에는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하지만 다 큰 자식을 치마폭에 가두는 것은 자식의 눈을 가리는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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