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하면 지금도 사과를 연상할 만큼 한때 대구는 사과의 명산지였다. 그러나 도시화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동구 평광동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사과밭을 구경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사과이야기가 다시 시민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31일 대구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 3세목(?) 기념식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1899년 의료선교사 존슨이 대구에 최초로 심은 사과나무의 2세목의 순을 채취해서 접을 붙여 키운 나무였다.
나무 3그루, 그것도 어린나무를 심는데 시장이 참석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문화에서 생명문화의 소중함으로 의식이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00여 년 전 존슨이 가져 온 사과나무의 2세목은 현재 수세가 너무 약해 삼단(三段)으로 설치한 지주로 보호하고 있으나 언제 훼손될지 모를 만큼 노쇠해 있다. 그런데 이 나무의 가치를 눈 여겨 본 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접목 묘를 키워 이번 행사를 마련한 것은 놀라운 발상으로 칭찬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1999년 개원 100년을 맞은 동산의료원은 초대 원장을 역임했던 존슨이 처음으로 가져온 사과나무의 2세목을 동산에 심었다. 그때 필자는 대구를 상징하는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이 살아있다는 기쁨에 수령이 70년밖에 되지 않는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가을에 찾았더니 열매가 너무 작아 원조 사과나무의 2세목이 아닌 것 같은 의문이 들었고, 면밀하게 검토하지 아니하고 지정하도록 한 것 같아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접을 붙인 나무를 심는다고하니 반갑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대구사과의 도입경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오래된 사료는 일제강점기에 간행한 '대구부사'(우에노 히꼬하찌'1943'번역 손필헌)였다. 그 책에 의하면 1892년 영국인 선교사 푸렛처(A. G. Flecher)가 '스미스사이드''레드베아민''미조리' 등 3개 품종을 가져와 자택에 심었다고 했다. 다음은 '대구시사'(대구시사편찬위원회'대구광역시'1995년)로 역시 1892년 영국인 선교사 프렛처에 의해 소개된 후 대구 농업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간행된 '경북능금백년사'(경상북도 중앙개발주식회사'1997)에서도 대구부사(大邱府史)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
이런 기존 사료의 푸렛처 도입설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박영규(전 대구MBC 전무)였다. 그는 '대구능금 내력의 오류, 중악집 제2호'(1992)에서 '대구부사'나 '대구시사'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대구에 최초로 서양사과나무를 도입한 사람은 닥터 존슨(한국명 장인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산의료원 100년'(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1999)에서는 존슨 이외 아담스(한국명 안의와)도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이 서양사과나무를 교인들에게 보급할 때 '존슨은 수입 묘목을 그대로 나눠주고, 아담스는 (우리나라산 토종 능금나무에) 접을 붙인 후에 나눠준 것에 차이가 있으며, 수입처도 존슨은 미조리주이고, 아담스는 켄서스주라는 사실이 다르다'고 했다.
이어 동산의 2세목 앞의 '사과나무 100년' 표석(標石)에서는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의 서양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초대 병원장인 존슨(Wood bridge O, Johnson, 한국명 장인차) 박사가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사과나무의 효시이다'라고 적어 놓았다.
이상 여러 가지 자료들을 검토해 볼 때 '대구부사'나 '대구시사''경북능금 100년사'는 하나 같이 오류를 범했다. 그들이 최초로 대구에 사과나무를 들여온 사람으로 지목한 푸렛처는 존슨 후임으로 2대 동산의료원장으로 재임(1911~1941)한 사람이기는 하나, 국적도 영국이 아니고 영국계의 미국인이며, 사과 도입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조사를 하면서 또 하나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존슨이 보급한 사과나무가 접을 붙여 큰 열매가 열리도록 개량한 나무가 아니라, 수입한 묘목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열매가 작을 수밖에 없어 한때 품었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대구에 서양사과나무가 최초로 도입된 해는 1899년이고, 보급한 사람은 존슨(장인차)과 아담스(안의와) 두 사람이며, 현재 동산의료원에 서 있는 것은 존슨이 가져온 나무의 2세목이며 금번 새로 심은 나무는 이 나무의 순을 채취해 접을 붙인 나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심은 나무를 3세목이라고 표기한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올바른 표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2세목과 다른 나무를 교접시켜 새로 태어난 나무라면 가능한 말이지만 접목하여 유전형질을 그대로 유지시켰기 때문에 접목 묘 또는 복제(複製) 2세목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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