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뻐꾸기 복숭아

고향 떠오르게 하는 어린 시절 느꼈던 새콤한 맛

복숭아는 기다림의 과일이다. 긴 겨울이 끝나고 나무와 풀꽃들이 새봄을 맞아 열매를 달 때까지는 제대로 입맛 다실 과일이 없다. 사과는 푸석푸석하고 비닐 움막에서 재배된 딸기와 참외 등 하우스 과일들은 태양의 기를 받지 못한 것들이다. 이때 나오는 첫 과일이 복숭아다. 그래서 신선하다.

봄은 꽃을 꼬드겨 대지를 뒤흔든다. 봄바람이 불면 응달에 저만치 물러나 있던 수줍은 풀꽃들까지 연지곤지 찍어 바르고 살짝 고개를 내민다. 매화와 개나리가 산수유를 깨우고 그 봄기운이 복숭아 가지에 전해지면 산천은 온통 수채화 물감을 풀어 거대한 캔버스에 핑크빛 봄을 그린다.

꽃은 봄바람이 돌보지만 열매는 새들이 키운다. 그중에서도 종달새는 보리를 익게 하고 싱그러운 복숭아는 뻐꾸기가 살찌운다. 그래서 풋보리 낟알 속에는 종달새의 높은음자리가 들어 있고 햇복숭아의 살점 속엔 "쿠쿠루 쿠쿠 파로마"란 미국 흑인 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뻐꾸기 울음소리가 녹아 있다.

햇과일치고 복숭아만큼 여성적이면서 떠나온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고향 뒷산의 복숭아밭. 훈풍에 봄이 실려 올 때면 복숭아밭의 가지들은 일제히 아우성치며 너무나 화사한 색깔의 복사꽃을 피워 가난한 마음에도 환한 웃음을 웃게 해준다.

뻐꾸기가 이곳저곳 산등성이를 날아다니면서 키운 열매가 아기 주먹만큼 자라면 복숭아의 볼을 뒤덮은 솜털은 더욱 앙증스러워진다. 그것은 한때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소녀의 귀밑 솜털로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솜털이 보송보송한 복숭아 한 알에서도 고향을 보고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복숭아밭이 연이어 있는 탱자나무 사잇길은 오뉴월 우리들의 단골 하굣길이었다. 급우들과 함께 낄낄대다가도 주인 없는 복숭아밭 앞에 이르면 쥐 죽은 듯 사뭇 정적이 감돌았다. 울타리 사이를 빠져 들어가 복숭아를 잔뜩 따 넣은 후 각자 다른 방향으로 줄행랑을 친다.

하루는 급우 서너 명이 한패가 되어 복숭아 서리를 음모했다. 책 보따리는 힘센 친구가 몰아서 짊어지고 평소 눈여겨봐 둔 복숭아밭으로 갔다. 불행하게도 이날 따라 밭주인이 덤불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급우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었지만 어느 친구는 허둥대다 노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불안 속에 진자산 등성이에서 씹어 먹던 그 아리고 떫었던 복숭아 맛!

뻐꾸기가 울면 복숭아는 살찌고 보리는 덩달아 익는다. 해마다 보리타작 철이 오면 세 살 아래 동생과 함께 10리 밖에 떨어져 있는 월장못 밑에 있는 논에서 보릿단을 싣고 들어와야 했다. 들판과 읍내 사이의 산 비알에 복숭아밭이 있었다. 리어카에 보릿단을 싣고 오다 복숭아밭 입구에 멈춰 30원어치만 사도 둘이서 실컷 먹고도 남았다.

이 밭의 복숭아는 요즘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깨물면 갈라지는 소리가 청명하고 혀끝으로 배어 오는 새콤한 맛이 오싹한 전율을 일게 하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온 후 단 한 번도 그 새콤한 맛의 복숭아를 만날 수가 없었다.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는 보리타작 철이 오면 도시의 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잃어버린 유년 속에 묻혀 있는 복숭아 맛을 찾아 헤매곤 한다. 때로는 모양이 비슷한 것을 만난 기쁨에 한입 깨물어 보면 옛날의 그 맛이 아니어서 생각만으로 행하는 귀향의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고향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해도 미각으로나마 그리운 그곳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도시에서 늙어도 좋으리라. 그러나 도시의 어느 것 하나도 고향의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없으니 더 이상 서성대지 말고 돌아가야 하리라. 사람들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해도 나는 돌아가리라. 반드시 돌아가고야 말리라.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