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86)] 미셸 페트루치아니

경이로운 테크닉과 파워, 그리고 서정성

재즈가 가지는 특유의 어법 가운데 '즉흥성'(improvisation)은 가장 재즈다운 어법 가운데 하나이다. 스윙이나 블루노트 같은 특징적인 어법은 스타일에 따라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즉흥성이 빠진 경우를 재즈라 부르기 힘들다. 즉흥성이야말로 재즈를 재즈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며, 재즈를 자유의 음악으로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2011년 제천국제영화제에는 자유(즉흥성)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한 남자의 삶을 그린 영화가 상영되었다.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마이클 레드퍼드 감독의 영화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는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의 일대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선척적인 왜소증(골형성부전증)으로 채 1m가 되지 않는 키와 20㎏ 정도의 체중을 가진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눈물과 감동을 짜내는 휴먼스토리쯤으로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내내 자유분방한 재즈를 보여준다.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지만 재즈로 전향한다. 엄격하게 연주해야 하는 클래식 피아노는 애초 그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즈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자유는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삶을 관통하는 어법이다. 하지만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연주에는 라벨이나 드뷔시 같은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의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재즈 피아니즘과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의 만남은 현대 재즈 피아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1981년 재즈 종주국 미국에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소개되었을 때 음악 관계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거의 모든 연주에서 경이로운 테크닉과 파워, 서정성을 보여주면서 등장과 동시에 최고 연주자 반열에 오르고 명가 블루노트 레이블과도 계약한다. 이후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에 초대되고 전 세계를 돌며 콘서트를 가지는 강행군을 펼치면서 20세기 후반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그에게 공식적으로 '최고의 유러피언 연주인'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프랑스 정부는 레종 드뇌르 훈장의 최고 품위인 쉬발리에를 수여하기도 했다.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겨우 머리가 보이고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했지만 격한 감동을 주는 그의 연주를 아쉽게도 이제 무대에서 들을 수 없다. 1999년 1월 폐렴 합병증으로 36세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1997년 그의 연주를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을 것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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