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대구미술관에서 대단히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다다시 가와마타 특별전이다. 그는 1953년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세계를 유랑자처럼 떠돌며 예술가의 생을 즐기고 있다. 현재는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가와마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 작품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들고 미술 무대에 등장했다. 보잘것없이 낡은 나무 의자, 과일이나 생선을 담아 파는 나무 상자, 또는 폐기된 나무 조각 등 하찮은 물건들이 그의 작품 재료로 되살아난다. 특히 그가 나무로 된 물건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사용의 손때'와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의 빌딩 숲에 새둥지 같은 원시적 구조물인 '나무 오두막'을 올려 현대사회의 인간 조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2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되어 아직까지 폐허로 남아있는 독일 어느 시골 마을의 보잘것없는 성당을 나무판자로 복원시키며 전쟁의 상흔을 달랜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바르셀로나의 소외된 지역과 현대미술관을 연결하는 나무 육교를 제작, 설치함으로써 지역 주민 누구나 편리하게 전시장을 드나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예술 작업을 시도하는 다다시 가와마타는 오래된 성, 낡은 성당, 또는 퐁피두 센터와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기념물, 그리고 도쿄 시 한복판의 빌딩 숲 등에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개입시키며 마치 그곳에 기생하는 밝혀지지 않은 생물체로서 원시적 생명력과 역동성을 그 장소 속에서 뿜어내도록 시도한다. 즉 작가는 일상적이거나 소외된 지역과 장소가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부추긴다. 그의 전 작품을 관류하는 근원적 힘은 바로 이렇게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참여와 소통에 대한 의지는 이번 대구미술관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오래전부터 대구의 상징인 사과 보관용 나무 상자들이 작업의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낡고 무거워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9천 여 개에 달하는 사과 상자들이 서로 맞물리고 이어 붙여져 마치 미술관 파사드를 쓰나미가 덮친 듯 설치되어 장관을 이루고, 전시장 안은 사과 상자로만 이뤄진 사과 과수원으로 펼쳐진다.
우리는 9천여 개의 사과 궤짝을 구하기 위해 대구와 대구 인근의 경상북도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새것과 간편함에 익숙한 우리 시대에 무겁고 거친 사과 궤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의 기억 밖으로 사라져 쓸모없이 된 사과 상자 9천 개를 수집한다는 것이 처음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과수원, 농협, 과일 상인 등 관련 업종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농가 구석구석에 버려져 있던 용도 폐기된 사과 상자를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 전시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7월의 폭염 속에서 상자 하나하나를 철사를 이용해 이어붙이는 작업이 이뤄졌고, 이렇게 다섯 개씩 묶인 상자를 다시 미술관 파사드 옥상에서 앞마당으로 이어 매달아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미술관을 한 입에 집어삼켜 버릴 듯 몰려오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괴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하나하나 정성껏 이어 붙인 친근한 사과 상자들임을 알고는 다시 놀라게 된다. 따라서 가와마타는 낡은 사과 궤짝으로 대구라는 전체, 즉 지리적 대구와 거기서 살아가는 인간들, 자연환경, 그리고 역사를 어느 하나 소외시키지 않은 채 모두 함께 예술로 녹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예술적 힘은 상호 소통하려는 의지로부터 나온다. 다다시 가와마타는 아틀리에에 갇혀 창작의 고통을 견디며 홀로 고독하게 투쟁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타인들과 함께하고 소통하는 예술을 겨냥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와 관람자가 창조자와 소비자로 분리될 수 없으며 예술은 고립된 행위가 아닌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예술은 통상적인 '미'의 추구라기보다는 신성한 노동이 수반된 살아있는 현장의 삶,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통의 매개물이다. 11월 4일까지 열리는 다다시 가와마타전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람을 기대한다.
이수균/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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