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를 맡아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등) 의식, 무의식 중에 이런저런 준비를 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내가 제대로 준비가 된 것인지, 확신이 선 것인지 대답을 할 수 없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그는 "대통령은 국가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결정은 국가와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거운 자리"라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그는 2개월여 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특강 정치에 나섰다가 '대선에서 관심을 떼어달라'며 불출마로 돌아선 바 있다. 2009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들여 1년여 동안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여권 내 대선 주자로 떠오른 적도 있다.
총리 취임 직후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나선 그는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반대한 박 전 대표에 맞섰지만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는 실패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그는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전도사로 나섰고 최근에는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동반성장 문제에 올인하고 있다. 정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전진기지였던 옛 구로공단(구로디지털단지)에 자리잡은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이뤄졌다.
그의 행보는 여전히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직접 이번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가 새누리당보다는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교수 등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와 힘을 합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안 교수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안 교수가 분식회계 혐의로 사법처리된 최태원 SK 회장의 구명 탄원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소 친분있는 사람이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데 수수방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최 회장이 법정에 갈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고 또 안 교수가 좀 더 사려깊은 행동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등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어 "한국적인 정서에서 '나몰라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 교수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반응도 보였다.
또 안 교수에 대해 "그의 책('안철수의 생각')을 보면 지금까지 바르게 살아온 것 같다. 남에게 베풀 줄도 알고 기업하면서 경제현실에 대해 제대로 인식도 하고 있고 좋은 점이 많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정 전 총리는 "김두관 후보도 겸손하고 좋은 분 같은데 동반성장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며 안 교수 외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인사가 더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어느 누구와도 의기가 투합하면 함께 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자신이 직접 대선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은 채 "분명한 것은 일생 동안 동반성장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동반성장을 실천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며 연대의 문을 활짝 열어놨다.
그러나 "안 교수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내세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안 교수와의 연대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묻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정당 간) 스펙트럼의 차이가 없다" 며 "있다면 이념보다는 지역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기존 정당에 대한 생각도 내비쳤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는 정치권에 알려진 것 처럼 썩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총리 취임 직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는 수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가 박 전 대표 측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고 이 문제를 두고 박 전 대표를 만나 설득하려고 했지만 만나지도, 수정안을 성공시키지도 못했다.
그래선지 박 전 대표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세종시 문제를 다루면서 (박 전 대표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 전 대표는 고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통일이 언제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염두에 두지 않은 채)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또 수도를 분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분은 큰 역할을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세종시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과연 애국심이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총리 재임 시 박 전 대표와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둘러싸고 강하게 충돌한 것에 대한 감정이 배어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박 전 대표를 직접 만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 받은 수모(?)도 감추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세종시 수정안을 만들어 박 전 대표를 설득하겠다고 한 발언이 보도되자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친박계 정치인이 "누가 누구를 설득하겠다고 하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박 전 대표에게) '설득'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이해와 협조를 구하겠다고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이렇게 정치권에서 두들겨맞는 과정을 통해서 맷집을 키웠다. 그는 "서울대 총장을 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대 철폐론'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서울대를 공격하고 나서자, 전면에서 싸운 적이 있었고 세종시 때도 (박 전 대표 측과) 그랬고, 동반성장위원장 시절에는 대기업의 초과이익 공유제를 주장하다가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며 스스로 "맷집이 좋아졌다" 는 표현을 썼다.
사실 5년 전에 비해 그는 맷집뿐만 아니라 총리로서 국정 경험을 쌓고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아 대'중소기업 문제의 해법에 나서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등 늘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최근 보이고 있는 정치적 행보는 총리로 몸담았던 이 정부보다는 야권 쪽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한 적이 없고 이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지만 이 대통령과 정치철학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이 대통령이 추진한) 친대기업 정책과 남북대결구도를 완화시키는 균형추 역할을 하려고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의 이념적 좌표를 '중도'로 규정했다. 민주통합당의 정책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새누리당과도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전신인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중도적 의견을 피력하자 '좌파'로 몰렸고, 민주당 사람들이 집권했을 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 '우파'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보좌했던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주 후한 점수를 줬다.
미국발 글로벌 위기 속에서 집권한 이 대통령은 OECD국가 중에서 폴란드 호주와 더불어 위기 극복을 성공시킨 데 이어 '20-50클럽'(소득 2만달러-인구 5천만 명인 국가)에 가입하는 등 세계적인 무역대국의 입지를 굳히는 성과도 거뒀다고 평가했다. 대미 외교와 경제외교 분야에서의 성과도 괄목할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양극화 심화와 ▷편중인사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측근비리였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리는 대통령 측근 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원포인트 개헌을 하든 종합적인 개헌을 하든 이번 대선 과정에서 개헌 문제가 이슈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주변 사람들이 대신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대선을 앞둔 지금의 시대정신을 '바른 사회, 따뜻한 사회, 품격있는 사회'로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바른 사회'란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권력에 따라 절차가 무시되거나 법의 형평성이 따로 적용되고, 편법적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회다. 또 '따뜻한 사회'는 그가 추구하는 동반성장하는 사회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말한다. 즉 성장의 틀을 유지하면서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사회다. 품격있는 사회란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 그런 사회다.
그의 화두는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데 이어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도 사회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다 함께 잘사는 동반성장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20년 전 '도전받는 한국경제'라는 책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누구보다 먼저 주장한 바 있는 그에게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동반성장에 대해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며 빈부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시와 농촌 간, 남녀 간, 또 한국과 다른나라 간의 동반성장을 포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대'중소기업 그중에서도 제조업에 국한해서 동반성장 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다른 문제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즉 대기업은 수도권에 집중돼있는데다 재벌로서 부자이기 때문에 전선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강자와 약자 간 포괄적인 해법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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