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말고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했다
나로서는 충분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문 잠긴 초록 대문 앞에 앉아
길고 아득한 골목 끝을 바라보다 혼자 깨달았다
나는 나인데 나 말고 무엇이
왜
되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는 없는 게 없고 세상에 없는 건 나뿐인데
나는 나 말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내가 나 말고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
을까
그날 오후 그 봄의 마지막 꽃들이 한꺼번에 지고 있었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노을이 골목에 밀려들 때까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내가 무엇이 되겠다고 결심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나 말고 무언가 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나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갔다
시인에게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른바 '위대한 거부'를 행해야 하는 의무이지요. 그 거부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삶의 근원적인 문제와 닿아 있기에 아무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거부하는 자명한 사실은 '장래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부정하고 자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과 다른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아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되었나요. "아무 것도 아닌 게" 된 것은 아닌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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