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과 연극인

'배고픔에 주저 앉을 것인가, 결핍을 이겨낼 것인가?'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혹은 예술인은 배고프다는 얘기 들어봤을 겁니다. 물론 오래 전 얘기죠. 근데 꼼꼼히 둘러보면 아직도 변할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전업 예술인들이 예술만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든 게 분명한 현실이니까요. 배우'연출'작가 등 연극계도 여느 예술 분야와 다르지 않죠. 그러다 보니 생계를 위해 연극인은 하나둘씩 연극계를 떠나게 되고 남은 사람은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연극 경력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죠. 이 때문에 연극배우들은 생계를 위해 방송으로, 혹은 영화로 진출하기를 희망하기도 합니다.

사실, 예전에 '연극하면 배고프다'는 의미는 일종의 절대적 빈곤처럼 실제 밥을 굶는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정말 배고픈 건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움이고 고통이었겠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 세대의 절대적 빈곤, 배고픔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상상을 할 뿐이죠. 아무튼 과거에 비한다면 현재에는 배고픔이라는 의미가 절대적 빈곤이나 실제 밥을 굶는다는 의미보다는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을 의미하고 있죠.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고 예술과 연극도 성장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앞서 말한 상대적 빈곤 혹은 빈부 격차는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점들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 연극을 하는 사람들에겐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시대는 아니잖아요. 물론 아주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중요한 문제는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결핍'이니까요. 어떤 형식의 예술이든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삶을 바라보는 '절박함'과 현실적 고통을 초월해 삶을 볼 수 있는 '여유'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동시에 생겨나게 되죠. 그래서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절박함'과 여유를 예술로 승화시켰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죠.

하지만 오늘날의 예술가들, 특히 연극인에게 절박함과 여유는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들은 여유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괜찮은 예술가들은 절박함이 없어서 한 단계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거죠. 예술가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어떠한 결핍입니다. 연극도 마찬가지죠. 물론 여기서 말한 결핍은 궁핍함과는 다른 거죠. 삶에 대한 결핍, 즉 그 부족함을 자신이 가진 예술혼 같은 것으로 채워주어야 하는데, 여러 부분 특히 경제적 문제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분노하거나 포기하며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예술가로 성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성공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술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배고픔으로 대변되는 궁핍과 결핍의 차이를 깨닫고 난 다음에 그 결핍을 무서워하지 않고 이겨내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유는 있지만 공허한 그 무엇, 즉 자신에게 결핍된 그 무엇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예술인, 연극인이 느껴야 할 실질적 배고픔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배고픔에 주저앉을 것인가,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일어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예술인, 연극인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하면 언제나 청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청춘을 누릴 수 있는 거죠. 인간의 젊은 열정이 예술을 만들어내니까요. 한마디로 예술을 하고 즐기면 청춘이 되는 거죠. 예술인이든 예술을 지켜보는 사람이든 모두 자신의 결핍을 채워가는 건 같으니까요. 그러니 청춘을 영원히 누리고 싶다면 예술, 그중에서도 맛있기로 소문난 연극을 드셔보십시오! 여러분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연극 메뉴가 오늘도 극장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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