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끝-道界마을을 찾아서] <9> 상주시 화북면 운홍리(속리마을)

상주시-괴산군 온천 갈등…축제 번갈아 열지만 앙금 여전

국도37호선 보은군 산외면 경계에서 본 상주시 화북면 이정표.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는 왼쪽으로 충북 보은군 산외면과 오른쪽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국도37호선 보은군 산외면 경계에서 본 상주시 화북면 이정표.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는 왼쪽으로 충북 보은군 산외면과 오른쪽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상주시 화북면 용화마을 또는 속리마을로 불리고 있는 운흥리는 속리산(俗離山) 문장대를 비롯해 묘봉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소유하고 있어 전국의 등산 마니아와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국립공원 속리산은 면적(283.4㎢)이 울릉도의 세 배가 넘는다. 이 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사이의 산으로, 소백산맥 중 경치가 좋아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불린다.

화북면은 문장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형성된 지역으로, 우리나라 3대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낙동강은 물론 한강이 속리산 용화마을에서 발원하고, 보은 쪽으로는 금강이 발원한다. 이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해발 1천50m의 문장대(文藏臺)는 상주의 자랑이며 운흥리마을의 든든한 배경이다.

그러나 속리산을 통상적으로 '보은 속리산'이라 한다. 지정학적으로 '상주 속리산'이 자명한데, 많은 사람들은 법주사가 있는 보은을 통해 속리산을 접근한다. 그러니 상주는 너무 속상하다. 이뿐만 아니다. 한강 수계에 있는 화북면 중벌리, 운흥리의 문장대 온천 개발 실패 이야기는 이곳 주민들에게 큰 상심을 주었다. 화북면은 전체 면적의 51%가 속리산국립공원 구역에 들어가 있다.

운흥1'2리 84가구, 175명과 인근의 중벌 1'2리 104가구, 205명까지 총 380명이 왼쪽으로 충북 보은군 산외면과 오른쪽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경상도 안의 충청도로 불리는 이 마을은 생활권이 사실상 보은군과 괴산군이고, 지루한 온천 개발 후유증 탓에 실제 충청도 편입까지 추진되고 있어 경북도가 긴장하고 있는 도계 지역이다.

◆온천 개발 때문에 27년째 갈등의 도계

절경을 과시하는 국립공원 속리산 자락의 운흥마을은 관광 상주의 꿈을 앗아간 '문장대 온천지구(160만 평)'가 있다. 보통 상주 온천, 문장대 온천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불렀다. 기록에는 없으나 구전으로는 조선 중기에 개발되었다고 하며, 만병을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한센병에 특효가 있어 당시 상주, 보은, 괴산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한센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다는 유명 온천지대였다.

1985년 2월 21일 경북도 고시 27호로 온천지구로 지정된 이후 충북 괴산군과 상주시가 싸움을 벌이는 갈등의 땅이 된 지 27년이다. 문장대 온천이 개발되면 법주사와 충북을 찾은 관광객들이 경북으로 유출되고 남한강 하류 지역인 충청도 주민들의 수질오염 피해 등을 우려한 충북도와 괴산군이 집단 시위와 법정 소송 등 개발 반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공정률 70%까지 진행된 터라 지금도 그 개발 흔적이 풀과 나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하루 150t의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때 외지인들이 땅을 사러 많이 왔던 그때의 부푼 꿈은 잠든 형국이다. 현재는 온천지주조합이 온천을 개발한다고 파헤쳐 놓은 뒤 공사를 중단,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로 변했다. 게다가 산자락을 깎아낸 곳은 비가 올 때마다 토사가 흘러내려 산사태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산사태 방지시설조차 안돼 절개지에 서 있는 수십 년 된 소나무와 잡목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온천개발 사업은 지루한 법정 싸움 끝에 2009년 10월 대법원에서 개발 허가 취소 확정 판결이 나온 뒤 일단락됐다. 법원이 괴산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0년 넘게 싸움을 벌인 탓에 양쪽 민심은 멀어지고 갈라졌다. 그해 두 지역 자율방범대가 체육대회를 공동 개최한 것을 계기로 이후 두 면이 함께 하는 체육대회, 축제 등을 번갈아 열면서 옛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지만 앙금은 남아 있는 상태다.

◆충청도 편입 요구 왜?

밭작물을 심어 연명해오던 상주 운흥리 주민들은 대부분 온천지주조합원들이다. 온천개발지구에 묶여 20여 년간 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도 제한받아왔다. 온천이 들어설 경우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장기간 끌어온 소송이 괴산군의 승리로 끝나자 허무감에 젖어 있었다.

주민 김석규(62) 씨는 "만약 상주 운흥마을이 생활권이 같은 충북에 일찍 편입돼 있었더라면 온천 개발은 벌써 이뤄졌을 것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같은 주민들의 피해 의식과 상실감은 경북도민임을 포기하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2007년 4월 운흥리 주민 150여 명은 용화초교 앞에서 '살길 찾아 충북으로 가자'는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행정구역개편추진위원회 발대식을 열어 행정구역을 상주시에서 보은(충북)으로 바꿔 줄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청와대와 행정자치부, 경북도 등에 발송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주민들은 "괴산과 상주의 싸움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온천지구가 황무지로 변해 지금은 그 절경을 잃어 등산객 마저도 찾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며 경북인임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지금도 드러내고 있다. 괴산 편입보다는 보은을 원했던 것은 온천 개발에 대한 앙금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민들의 이 같은 의지는 생활권이 사실상 충북인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민 심팔보(61) 씨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보은장과 괴산장을 보고 있다"며 "상주에서는 버스가 하루 2대 들어오지만 보은군에서 10대, 괴산군에서 7대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편이 안좋으니까 자녀들도 모두 충북으로 중'고교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말투, 음식도 충청도 풍습이고 상주시청 등 경북의 관공서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오히려 보은군청에나 괴산군청에는 동창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여튼 경북도와 상주시와는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여기 출신 충청도 공무원들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승진 불이익 등 차별대우를 받는다"며 "진급이 잘 안 되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으니까 주민등록도 보은과 괴산으로 다 옮겨 버리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도계를 넘은 괴산군의 선심행정

운흥리 주민들이 충북 보은으로의 편입을 요구하자, 괴산군은 2008년부터 갑자기 버스 노선을 조정, 증편을 했다. 종전 괴산군 버스가 청천면까지 오고 경계를 넘지 않았는데 상주시의 동의를 받아 7대를 넣어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보은을 경유하지 않아도 청주로 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버스 넣어준 첫날 임각규 괴산군수가 타고 들어왔다. 괴산은 고추 축제를 할 때 이곳 주민들에게 초청장과 차량을 보낸다. 축제 때 괴산에서의 고추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운흥리 주민들을 초청하는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 마련에도 예산을 들이고 있다.

이처럼 괴산군은 운흥마을에 대한 적극적인 선심행정을 도계를 넘어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괴산군 공무원들은 주민들에게 '충청도 편입 요구를 할 때 보은으로 간다고 하지말고 괴산으로 간다고 해달라'고 은밀히 요구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 김석규 씨는 "괴산군은 장기적으로 볼 때 운흥리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 개편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이곳을 기반으로 관광지 개발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 상태로는 경상북도가 주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도, 상주시 주민 상실감 치유책 시급

괴산군이 운흥마을에 행정과 교통 지원까지 해주는 이유는 차후 중앙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할 경우 운흥리를 괴산으로 편입시키려는 속내다. 괴산군수가 운흥리에 버스를 처음 넣을 때 그 버스에 직접 타고 들어와 주민과 대화를 갖는 등 열성적 태도를 보여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러다가 천년의 자원을 간직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가 충북으로 편입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경북도와 상주시는 이곳 주민의 상실감 치유를 위한 각별한 대책을 내놓는데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주민들은 "온천이 사양산업이 되고 있지만 개발이 묶여 있는 시설지구를 빨리 해제하고 적극적인 차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온천수를 이용해 고급 스파와 워터파크 등 물놀이 시설을 갖출 수 있고 주변 경관이 좋아 전원주택, 은퇴자마을 등으로의 개발 방향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주, 보은, 괴산 등 3개 지자체가 공동 관광특구를 추진해야 주민들한테도 소득이 생기고 싸울 일도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을 인근에는 문장대'화양구곡'선유구곡 등의 명소가 있을뿐 아니라 수안보온천'월악산국립공원 등과 가까운 위치여서 이들과 연계한 관광권이 형성되면 인근의 청주, 괴산, 상주 등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서울'대구'대전 지방의 1일 관광지로도 가능하다는 기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상주'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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