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존의 강, 희망의 강] (27) 지붕 없는 박물관, 영양

석문 정영방이 1613년에 조성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간정원인 서석지의 모습.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배롱나무, 은행나무 등이 어우러져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석문 정영방이 1613년에 조성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간정원인 서석지의 모습.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배롱나무, 은행나무 등이 어우러져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역모자들의 난을 평정했다는 전설이 깃든 남이포의 남이정.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역모자들의 난을 평정했다는 전설이 깃든 남이포의 남이정.
영양군은 2009년 일월면 용화2리 윗대티마을에 반변천 발원지 표지석을 세웠다.
영양군은 2009년 일월면 용화2리 윗대티마을에 반변천 발원지 표지석을 세웠다.

영양 반변천의 아름다움은 문학의 모태가 됐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반변천에서 꿈을 키웠다. 이들이 나고 자란 전통마을은 정갈하게 보존돼 예스러운 멋을 더한다. 영양의 자랑은 '자연' 그 자체다. 천연기념물인 측백수림, 선바위와 남이포의 깎아지는 듯한 절경, 우뚝한 산세를 지닌 일월산 등을 바탕으로 친환경 생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문청(文靑)을 품은 어머니 강, 반변천

반변천은 문학 청년들의 고향이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과 그 가문들은 강을 따라 터를 잡았다.

지조론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영양 주실마을(일월면 주곡리) 출신이다. 그의 생가인 호은종택을 비롯해 옥천종택, 월록서당 등이 옛 향기를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마을엔 지훈의 문학 세계와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훈문학관'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지훈의 대표시인 '승무'가 흘러나온다.

주실마을은 조선 중기 때 환란을 피해 정착한 한양 조씨들의 집성촌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일찍이 개화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한 선비의 마을이었다.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의 작가 이문열도 영양 두들마을(석보면 원리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영양과 그의 집안이 등장한다. 후진 양성과 한국 현대문학의 연구를 위해 건립된 '광산문학관'에선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두들마을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석계 이시명(1590~1674)이 1640년 터를 잡은 재령 이씨 집성촌이다. 현재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 채가 잘 보존돼 있어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영양읍 감천마을은 항일시인 오일도(1901~1946)를 낳았다. 순수 서정 시인이면서도 정한을 노래한 민족 시인이었던 오일도는 1935년 시 전문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낙안 오씨 집성촌인 감천마을은 기와집과 나지막한 돌담이 어우러져 있다.

◆지붕 없는 천연박물관, 영양

영양은 '지붕이 없는 천연박물관'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이야기를 지닌 역사 유적이 고루 분포해 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우리나라 3대 민간 정원 중 하나인 서석지(압암면 연당리)다. '복되고 길한 기운이 도는 돌의 연못'이란 뜻의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 때 문인인 석문 정영방(1577~1650)이 1613년에 조성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간 정원이다.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주일재'수직사 등의 건물이 백일홍'은행나무 등과 함께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연못에는 연꽃과 함께 90여 개의 바위와 돌이 있는데 60여 개가 물 위로 드러나 있다. 그 중 20여 개에는 신선이 노니는 돌, 나비가 노니는 돌, 떨어진 별의 돌 등 이름이 붙어있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석문은 자연을 주어진대로 최대한 이용했고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두어 시를 지었다.

서석지에서 차량으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선바위와 남이포가 있다. 선바위는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깎아 세운 듯 거대한 촛대 모양을 하고 있다. 남이포는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역모자들의 난을 평정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절벽을 끼고 흐르는 반변천과 동천이 남이포에서 합류해 큰 강을 이룬다.

영양하면 일월산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정상에는 일자봉, 월자봉 등 두 봉우리가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울릉도가 보인다. 조선 말 최시형 동학교주가 수도하면서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집필했다. 신돌석 등 의병이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한글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이를 쓴 장계향도 영양의 자랑이다. 장계향은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로서 학문과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다. 음식디미방은 양반들이 일상생활에 먹는 음식의 재료와 그에 따른 조리법, 보관법 등의 비법이 상세히 서술돼 있다.

박원양 양양군 문화해설사는 "예부터 선조들은 경치 좋고 물 맑은 곳에 터를 잡고 학문을 연구해왔다"며 "일월산'반변천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지닌 영양에 자리 잡은 명문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 학자들을 배출해 왔다"고 설명했다.

◆외지 산골에서 맛과 멋의 관광지로

영양군은 깨끗하게 보존된 자연과 유서 깊은 역사 문화를 살린 관광 개발에 나섰다.

일월산 자락에 자생화공원(일월면 용화리)이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광물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제련소와 선광장이 있던 자리를 일월산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꾸몄다. 토종 야생화 수십 종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향토자원 식물을 보존하는 생태환경의 교훈과 일제 수탈의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수비면 수하리에는 반딧불이 생태체험마을 특구가 있다. 청소년 수련원과 반딧불이 생태학교을 비롯해 쏘가리, 꺽지, 사슴하늘소, 은어 등 청정 자연의 멋을 만끽할 수 있다.

영양은 청송, 봉화, 영월과 함께 2010년부터 외씨버선길을 조성하고 있다. 내년이 되면 4개 군을 잇는 170km 도보길이 완성된다. 조지훈 문학길의 소나무 숲길과 척금대에서 지조와 절개를 배울 수 있다. 역사적 아픔이 묻어있는 일제강점기의 광산을 둘러보고 반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의 경관과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영양군은 석보면 두들마을 일원에 지난해부터(2015년까지) 308억원을 들여 전통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음식디미방 체험관과 전수자 교육시설인 아카데미를 조성한다.

영양은 볕이 좋고 산림이 우거진 청정지역 이미지를 활용해 생태마을 및 친환경 농업의 중심지로 거듭나려한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17년까지 562억원을 투입해 영양읍에 '산촌문화누림터'를 조성한다. 물돌이 형상의 하천을 복원해 생태마을'펜션단지'가족농장 등을 집중 배치, 가족 단위 이용객이 산촌과 농업을 체험할 수 있게할 계획이다.

전화식 경북도 관광진흥과장은 "영양의 청정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역사 문화를 활용한 관광자원화가 필요하다"며 "전통 음식을 전승하고 현대인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현대화하고 전통 숙박시설을 확충해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말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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