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 동현아, 보고 싶다!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환경복지부장을 맡고 있는 내 자리는 학생생활부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기에 늘 시끌벅적하다. 오늘도 학생 한 명이 학생부 선생님에게 훈계를 듣고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선생님이 무어라고 할 때마다 그저 피식 피식 웃기만 한다.

그 학생을 보고 있자니 초임 교사 때 만난 동현이가 생각났다. 동현이는 늘 교실 뒤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장난을 걸어도 그냥 피식하고 웃기만 할 뿐이고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봉사동아리에 동현이를 가입시키려고 의사를 물어봤다. 동현이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재차 물어보아도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봉사동아리가 처음으로 양로원에 목욕 봉사를 가는 어느 토요일. 2교시 수업 후 동아리 회장으로부터 '오늘 나갈 학생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 수 없이 우리 반에서 지원자를 받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말을 꺼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재차 물었지만 내 눈을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혹시나 하고 '희망 학생은 종례 후 학교 입구에 나와'란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왔다. 종례 후 짐을 챙겨 학교 입구로 나가니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출발하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동현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차 앞을 가로막았다. 피식 웃으며.

양로원에 도착했다. 나는 때 밀기, 머리 감기기, 물 닦아 드리기, 옷 입혀 드리기, 손'발톱 깎아드리기 등 학생들을 적절히 배정하고 열심히 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모두들 처음 온 학생들이어선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솔선수범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내가 먼저 웃통을 벗고 때수건을 손에 잡은 뒤 땀을 뻘뻘 흘리며 할아버지 한 분의 등을 밀어 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질러 학생들을 독려해도 반응이 없다. 동아리 회장을 조용히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할아버지들 몸에서 냄새도 나고, 같이 물에 들어가면 피부병에 걸릴 것 같아요" 하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동현이가 반바지도 벗고 때밀이 수건을 들더니 할아버지 한 분의 등 뒤로 가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열심히 때를 밀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도 모두 반바지를 벗더니 탕으로 들어가 열심히 할아버지들을 씻겼다. 잠시 뒤 동현이는 친구들에게 할아버지 머리 감기는 법, 때 미는 법 등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며 이번 활동의 리더 역할까지 해냈다. 돌아오는 길에 고맙다고 칭찬을 해줬더니 그저 피식거릴 뿐이었다.

다음해 동현이는 봉사활동 동아리 회장직을 맡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1년간 후배들을 다독여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한 결과 연말에는 인당봉사상을 받았다. 말이 없고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여겼던 동현이는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 또한 동현이 덕분에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지금도 동현이에게 무얼 물어보면 그저 피식거릴 뿐이다. 하지만 동현이의 눈빛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초임 교사인 나에게 힘이 되어준 동현이가 많이 보고 싶다.

이석훈 경북공고 교사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유승민 전 국회의원은 영화 '암살자(들)' 논란과 관련하여 박지만 EG 회장의 입장에 공감하며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언급했고, 박 회장은 배...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계가 세계 수주량의 63%를 차지하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로봇 도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HD현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
영화 '암살자(들)'로 인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서울 광화문에 역대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는 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 연방 정부 내에 '슈퍼지능' 태스크포스를 발족하며, 산업혁명과 인터넷보다 더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이 분야에..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