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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공연상품

이현창 대구시립국악단 악장
이현창 대구시립국악단 악장

몇 해 전에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여름휴가를 갔었다. 태국은 처음이었지만 뭐 관광해봐야 별거 있겠나 싶어 자유여행을 통해 호텔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수영이나 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아내의 권유로 몇 군데 관광을 다니게 됐다.

1주일가량을 여행하면서 나름 깨달은 태국의 관광거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먼저 싸고 풍성한 먹거리와 두 번째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태국전통 안마, 그리고 인상 깊었던 태국전통공연(씨암니라밋, 알카자쇼 등)이 그것이다.

태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물가가 많이 저렴한 편이었다. 그런데 저렴한 물가에 비해 유독 태국전통공연만은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다. 나도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크게 내키지 않아 한 가지 정도만 보자고 설득하던 차에 아내는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 몇몇 공연은 꼭 봐야 한다며 각각 다른 공연을 예약하고야 말았다. 1인 입장료가 1천500바트로 우리 돈으로 6만원 정도. 네 식구가 몇 개의 공연을 관람했으니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관람료로 지불되었다.

극장은 꽤 넓은 규모의 전용관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객석 규모가 훨씬 컸다. 얼핏 봐도 2천 석은 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공연이 임박하자 공연장은 관객으로 금세 가득찼고 임시 좌석과 입석까지도 모두 매진됐다. 객석을 둘러보니 태국사람은 거의 없었고, 세계의 인종 전시장 같았다. 태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공연을 관람한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의 내용은 태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스케일이 방대했고, 출연 인원 또한 엄청났다.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소재와 많은 볼거리, 빠른 무대 전환 등으로 인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후에 찾아 본 바에 따르면 태국의 한 맥주회사에서 운영하는 이 공연은 2005년 10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총 제작비가 미화로 4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단일 공연물에 그만큼의 엄청난 금액을 투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이 공연은 하루 매출이 억대가 넘는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아 전 세계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꼭 보게 되고, 베니스에서는 오페라를 한 편 감상한다면, 대구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공연은 무엇인가? 1년 내내 지역에서는 수많은 공연이 진행되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대구경북의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공연일까?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도 세계인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공연상품이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공연물을 만들고 싶어졌다. 가벼운 휴식을 위한 여행이었지만 큰 숙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다.

이현창 대구시립국악단 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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