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41) '코끼리' 감독의 조련

"스타도 찍히면 끝" 더그아웃엔 숨소리조차 안 들려

우여곡절 끝에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김응용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불가사의'로 여겨진 삼성의 한국시리즈 악연 끊기에 나섰다. 해태(기아의 전신)에서 9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명장은 우선 코치진부터 물갈이를 시작했다. 부임 다음날 삼성은 코치 6명을 해임했다. 장효조(타격), 이순철(주루) 코치 등 1군 코치 3명과 2군의 김성근 감독과 박정환(배터리), 장호연(투수) 코치 등이었다.

그 빈자리는 해태에서 손발을 맞췄던 코치들로 채워졌다. 해임이 있은 닷새 뒤 삼성은 수석코치 유남호, 타격코치 김한근'김종모, 수비코치 조충열, 투수코치 양일환을 각각 임명했다. 유남호'김종모'조충열 코치는 해태 출신, 김한근'양일환 코치는 삼성 출신이었다.

김 감독은 메이저리그 타격왕을 지낸 프랑코와도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역대 외국인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스펙에다 국내 첫해 타격 6위에 오르는 타격감을 보였지만 주루와 수비에 미숙한 프랑코는 김 감독의 눈엔 반쪽 선수였다.

그는 선수단에도 채찍을 휘둘렀다. 연봉계약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 한다는 이유로 임창용을 2군으로 보내 '일벌백계'의 사례로 삼았다. '이름'보다는 '실력'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자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느 때처럼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채워진 라인업, 여기에다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으니, 번번이 우승 저주를 경험했던 삼성 팬들 빼고는 모두 "이번 시즌 삼성의 우승은 이미 결정된 일이다"고 여겼다.

국민타자 반열에 선 이승엽, 마해영, 김기태, 진갑용. 마운드엔 임창용에다 김진웅까지. 김동수, 이강철이 벤치 멤버가 될 정도로 다른 팀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전력을 갖췄다. 야구팬들은 "팀을 두 개로 만들어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며 비웃음 섞인 농담을 할 정도였다.

겨우내 담금질은 끝낸 삼성. 기대에 찼던 팬들은 야구장으로 몰렸다. 한화와의 개막전 입장권은 1시간 만에 동이 났다. 그날 삼성은 이승엽이 개막전 1호 홈런의 축포를 쐈지만 7회까지 2대3으로 뒤져 '올해는 다르겠지'라고 기대했던 대구 팬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8회 마르티네스의 동점 홈런과 계속된 찬스에서 상대 투수의 폭투로 결승점을 뽑으며 개막전 역전승을 거두자 삼성 팬들은 단 한 경기에 "김응용 감독이 오고부터 선수들이 달라졌다"고 흥분했다.

껄끄러운 한화와의 개막 2연전서 전승을 거두며 시즌을 연 삼성은 1, 2위에 이름을 올리며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임창용'배영수'김진웅 등 젊은 선수 중심으로 개편한 투수진과 강동우'박한이'마해영 등 대폭 물갈이된 타선은 날이 갈수록 짜임새를 더했다.

쉽게 이기고 쉽게 지던 예전 모습도 사라졌다. 이기는 야구, 끈질긴 승부 근성으로 무장한 삼성은 어이없이 연패를 당하는 경우를 줄이며 승승장구했다.

잘나가는 삼성이었지만, 예전처럼 선수들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두산을 3위로 멀찌감치 따돌리고 라이벌 현대와 숨 막히는 선두 다툼을 벌이던 7월 24일 김 감독은 이승엽을 6번으로 강등하는 라인업을 써냈다. 간판타자 이승엽이 데뷔 후 처음으로 6번에 배치되는 모습을 본 선수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감독에게)찍히면 끝이다'는 긴장감이 선수단을 휘감았다.

당시 단장이던 김재하 대구FC 사장은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 선수들에겐 호통을 쳤다. 한 번은 경기에 앞서 한 선수가 어머님이 수술을 받으셔서 가봐야겠다고 감독에게 조퇴를 허락해달라고 찾아갔다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수술과 병 치료는 의사가 알아서 최선을 다할 것인데, 네가 가서 뭘 하겠느냐며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는 게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는 호통에 말 못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프런트에도 잦은 더그아웃 출입을 삼가 할 것을 요구했고, 더는 선수들을 개별 접촉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선수들이 야구에만 집중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것과 나에게 팀을 맡긴 이상 간섭을 하지 말라는 카리스마를 구단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내던졌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 때문인지 삼성은 몰라보게 끈끈해진 조직력과 투'타의 조화를 앞세워 정규시즌 1위를 차지,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쾌거를 빚어냈다. 그토록 바랐던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그리고 김 감독 개인적으로도 10번째 한국시리즈서의 헹가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명장에게도 삼성의 한국시리즈 악몽의 저주는 예외 없이 찾아왔다. 호투를 이어가던 외국인 투수 갈베스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돌연 출국한 뒤 6번이나 복귀 날짜를 연기하며 김 감독의 애간장을 녹였다. 갈베스'임창용'배영수로 한국시리즈 1~3선발로 낙점한 김 감독에겐 적잖은 근심거리가 됐고, 결국 갈베스는 돌아왔으나, 시즌 때 보여줬던 위력은 미국에 놔두고 온 상태였다. 덩달아 임창용까지 부진을 겪은 탓에 그 여파가 중간 계투진과 마무리에까지 이어지며 삼성은 제대로 반격을 해보지 못한 채 한국시리즈서 두산의 환호성에 또다시 들러리로 머물러야 했다.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실패를 맛봤던 김 감독. 그가 품은 독기는 다음 시즌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은 징검다리가 됐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