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토다큐] 필리핀서 온 주부 아미 클레어 빌라 씨의 한가위

한복 입고 제사 격식 어렵지만, 온가족 모여 '얘기꽃-웃음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 날. 풍요로움이 가득한 수확의 계절에 우리의 마음도 보름달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을 가진다. 조상께 올릴 햇 곡식, 햇 과일 등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지들 모습에 웃음꽃이 절로 피어난다. 그러나 명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흔히 명절증후군이라 불리는 주부들의 명절스트레스. 베테랑 주부들에게도 명절 음식 준비는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결혼해서 한국으로 온 다문화가정여성들은 어떻게 명절을 이해하고 음식을 준비할까? 결혼이민여성인 아미 씨에게도 명절은 차례상 준비와 다양한 명절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아 힘든다. 5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필리핀 출신 아미 클레어 빌라(26세) 씨의 추석맞이 준비를 들여다봤다.

"명절 음식은 대부분 시어머니께서 준비하시고 만들었어요. 저는 옆에서 심부름하며 거드는 정도였어요." 아미 씨는 다양한 명절 음식 중에서 가장 만들기 힘든 음식이 '전'이라고 했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 뒤집어야 하는 것도 어렵지만 특유의 기름 냄새가 싫다고 했다.

필리핀도 우리나라 추석과 유사한 명절인 '만성절'(11월 1일)이 있지만 규모, 절차 등이 한국보다 휠씬 간편하다. 6~8가지 정도의 음식을 준비해 온 가족이 모여 간단히 기도하고 식사하는 정도.

"한복 입고 조상님께 절하는 방법도 힘들고 제사 올리는 격식도 너무 복잡했어요." 그러나 아미 씨는 한국의 명절을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고 있다. 1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배웠고 대구 남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전통 제례교육, 명절 예절교육 등을 체험하면서 낯선 한국 명절을 알아가고 있다.

1녀 3남 중 장녀인 아미 씨는 명절이 되면 더욱 고향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립다. 그녀는 요리사인 친정 어머니가 해 주시는 명절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미 씨는 명절이 되면 필리핀에 자주 전화를 해 가족 안부를 물으며 향수를 달랜다.

아미 씨는 "가끔 너무 힘이 들 땐 컴퓨터 페이스북을 통해 필리핀 가족,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날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음식을 먹을 때 명절이 가장 보람된다고 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며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명절 맞이 준비를 한다.

명절이 돌아오면 1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역할을 시누이 정유정(40) 씨가 맡아 아미 씨와 함께 장도 보고 음식 준비도 한다. 아미 씨는 "마음씨 좋은 시누이가 있어 명절이 두렵지 않다"며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시누이와 함께 팔짱을 끼고 대문을 나선다.

글'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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