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나는 발코니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야산을 대면하고 있었다. 저곳을 오르기 전 오솔길이 하나 있는데,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10여m 전방, 한 여자가 아주 작게 꼼지락거리는 그 무슨 '생명'을 데리고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저게 뭐지, 저게 뭐지, 나는 궁금해하다가 그만 시야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약수를 뜨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이번엔 그 의문의 동행을 직접 만났다. 새였다. 그날도 여자는 한 줌도 채 안 될 것 같은 무슨 새 한 마리를 앞세우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이렇게 풀어놓으면 날아가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친 것인지는 몰라도 얘는 전혀 날지 못하네요"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다친 날갯죽지가 다 나았는데도 도무지 날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도 아직 새의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날지 못하는 새라니, 보기에는 당장에라도 포르릉,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여자와 새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새를 몰아 걷게 하는 여자, 그녀의 뒤뚱거리는 팔자걸음과 몸짓엔 새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새가 그만 풀숲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그래서 길고양이한테라도 잡아먹힐 것을 염려해 여자는 새의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문조 한 쌍을 키워본 적이 있다. 얼마 못 가 암컷이 피부병에 걸렸고, 곧 수컷에게도 옮겼다. 그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까지 새털이 날리는 바람에 그만 분양해준 곳으로 돌려보내 버린 적이 있다. 멀쩡하게 날 수 있는 새를 가둬놓고 키운 그 몇 달간, 나는 새를 전혀 치료해주지 못했다. 그래, 여자와 새를 보면서 나는 또 새삼 얼마간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저렇듯 날지 못하는 새를 운동시키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 그 길을 걷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녀와 그녀의 새를 기다리게 되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아파트 발코니에서도 그 길이 잘 내려다보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새가 저녁의 어두운 기미를 끌고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둠이 속깃에까지 스며들면 새는 참 평화로우리라. 일몰의 부근, 그녀는 그렇게 새를 품에 안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이다. 새는 언젠가 저 길을 활주로처럼 달려 날아오르겠지. 나는 내일의 이 시간을 또 기약하며 창문을 닫는다.
이제 머지않아 저 길에도 첫눈이 깔릴 터. 나는 추위가 닥치기 전까지라도 새의 종종걸음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어찌하랴, 저 걷는 새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아 그 무엇이 날 데리고 다니는가.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항상 스스로를 향해 미소 지어 주어라'라는 누군가의 문장을 읊조려 보았다.
석미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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