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흰 백자 작품을 선보이던 도예가 아키야마 준이 색다른 작품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9일까지 열리는 아키야마 준 대구MBC 갤러리M 초대전에는 도자기로 만든 장기판, 체스판, 바둑판 등이 전시돼 있다. 휴대전화를 열기만 하면 현란하고 중독성 있는 게임이 펼쳐지는 요즘, 손으로 만든 아날로그 게임판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때 아버지와 제가 이런 게임을 즐겼어요. 아버지와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이런 기억들이 이번 작품과 연결됐지요."
일본인 도예가인 아키야마 준은 타국에서 40대를 넘기면서 일본 고향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불쑥불쑥 난다. 음악을 듣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해한다. 그래서 이 추억을 작품과 연결해 보았다.
작가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제작 과정은 고되다.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두드려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흙을 반죽하는 것도, 깎아내는 것도 기계를 사용하면 완벽한 모양으로 나오겠지만 작가는 유독 손으로 작업하는 것을 고집한다. 사람의 손길, 불이 지나간 자리가 만드는 곡선, 그 여백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장기판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10㎏이 넘는 흙을 반죽하고 펴야 해요. 그래야 틀어지지 않죠." 게임판 위의 선은 상감기법을 사용해 만들었다. 이들 게임판은 실용적인 도구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 점의 오브제이기도 하다. 판뿐만 아니라 장기알, 체스말, 바둑알 등도 직접 만들었다. 이것들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응용했다. 바둑알은 커피 콩모양, 체스 말은 건축의 형상, 그리고 장기알에는 와이파이 무늬가 떠 있는 식이다.
"아직도 도자기는 예술로 보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아요. 올해 홍콩아트페어에 나갔는데, 작품 그 자체로는 호평하면서도 정작 예술로 바라보지 않더군요. 그래서 조금은 새로운 시도를 해봤어요."
아내 김현아 씨와 함께 청도의 작업실에서 매일 작업만 하며 살아가는 도예가 아키야마 준은 '어떻게 하면 간단한 형태로 아름답게 표현할까'를 생각한다. 원형 백자를 얹은 테이블도 겉으로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뒤틀림 없는 원형판을 얻기 위해선 몇 날 며칠 흙만 두드려도 시간이 늘 모자란다. "사람이 만드는 그 묘한 맛, 살짝 굴곡진 그 인간적인 맛이 도자기의 매력 아닐까요." 053)740-9923.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