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선거 후유증

영어의 '크로니클'(연대기)이나 '크로노미터'(시계)는 그리스신화에서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에서 유래했다. 신화에 따르면 크로노스에게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내인 레아가 아이를 낳으면 낳는 족족 삼켜버린 것이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인 하데스와 포세이돈, 헤라 등 5남매 모두 예외 없이 삼켰다.

여섯째 자식인 제우스를 임신하자 걱정이 된 레아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하소연하자 가이아가 꾀를 냈다. 바윗덩어리를 강보에 싸고는 대신 제우스를 안고 사라졌다. 예상대로 크로노스가 강보 통째로 삼켜버렸다. 이렇게 화를 면하고 성년이 된 제우스가 '이치'를 주관하는 테미스 여신에게 아버지가 삼킨 형'누나를 되찾는 방법을 듣고 크로노스의 밥과 술에 구토제를 넣어 토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신화에서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킨다는 것은 세월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냉혹한 자연의 이치를 상징한다. 또 크로노스가 자식을 토해 낸 사건은 세대교체의 의미라고 신화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대선 투표 결과를 놓고 20, 30대 청년층과 50, 60대 장년층 간 갈등이 표출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SNS에 허탈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젊은 층의 글들이 넘쳐나고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 친구에서 차단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 폐지' 청원 글에 1만 명 넘게 서명하는가 하면 '기초노령연금 폐지' '노인 자리 양보하지 않기'와 같은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노년층의 복지 혜택을 줄여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자는 불만의 표출인 셈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 결과에 젊은 층이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화에서 보듯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는 없지만 자식 또한 부모를 바꿀 수는 없다. 세상사 모든 게 제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세대교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기와 다르다고 노인을 폄하하고 보복하겠다는 것은 요즘 젊은 세대의 생각이 얼마나 좁고 조급한지를 말해준다. 후유증을 잘 다스려야 병에서 완쾌하는 법이다. 세상이 준 고통과 상실감마저 여유 있게 받아들인다면 그다음은 시간의 몫이다. 신이 노인에게는 주지 않았지만 젊은이에게 희망을 준 것도 그런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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