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해거름에 온 동네 까치가 공원 잔디밭에 모였다. 족히 100마리가 넘는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까치들이 조용하게 잔디밭을 배회하며 선을 본다. 일부 짝을 찾은 까치가 나뭇가지 위로 혹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 마주보며 한참 동안 날개짓한다. 그중 일부는 만난 짝을 포기하고 다시 잔디밭 까치가 모인 장소로 되돌아와서 다른 짝을 찾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한 까치는 나란히 날아 공원을 벗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울지 않는 까치들, 신기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저 많은 까치들은 왜 한 마리도 울지 않을까? 고층아파트에 살면서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해거름에 공원 잔디밭을 찾는 수백 마리의 까치가 왜 저렇게 모이는지, 동물생태학에 무지한 필자는 수년에 걸쳐 관찰하면서도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건성으로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사내 회식에 참가하는 회사원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까치의 회식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까치의 집단 맞선의 현장이었다. 그해 봄에 태어나 성년이 된 까치가 집단 맞선을 통해서 짝을 찾은 다음 함께 둥지를 짓고, 이듬해 봄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기 위한 종족 번식 과정의 절차였던 것이다. 수백 마리가 모인 까치가 울지 않고 조용한 것은 맞선의 광장을 그만큼 엄숙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례의 표현이었다.
까치는 한 번 만난 짝과 평생 해로한다. 까치를 관찰하다보니 둥지나 영역을 침범한 뭇새들과 싸움을 벌인 아파트에 거주하던 수컷이 꽁지털이 몽땅 빠져 날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격했다. 까치의 죽음은 암컷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처절한 싸움을 벌인 결과였다. 흔히 금실이 좋은 부부를 잉꼬나 원앙같다고 한다. 의 좋고 사이좋은 부부를 새에 비유한 말이다. 여기에 까치를 추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수컷의 죽음을 목격하고 난 이후이다.
성탄절의 의미는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족 사랑에서 사랑을 배운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 세모를 맞아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가지가지다. 치열했던 대선의 결과 승자는 기쁨이 충만한 한 해로, 패자는 울분과 회한의 한 해로 기억될 임진년이 지고 있다.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외친 예수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이웃은 없다. 사랑 앞에선 정치적 이념이나 이웃 간의 갈등은 한낱 쑥부쟁이에 불과하다. 나부터 먼저 마음을 열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은 당신을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계사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온갖 불신과 갈등을 털어내고 사랑으로 충만한 사회가 되기를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정재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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